
애국심은 건달들의 최후 도피처다. by 썬더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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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데 교통방송에서 익숙한 풍경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은평구청 옆에 있던 도원극장, 가본지 오래되었지만 선명하다. 그 곳에서 손으로 간판을 그리는 분의 짧은 영상이다. 방송되는 화면을 보니 몇 년 전에 촬영한 모양이다. 이 극장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페이스 오프> 였을 거다. 하나의 극장을 세 개의 상영관으로 나누기 전이니 십 년도 더 됐다. 작년이었던가. 우연히 지나치다 극장이 없어진 걸 보고는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대개의 토착극장이 그렇듯, 도원극장도 동시 상영관으로 전성기를 맞이하다 흐름에 따라 멀티플렉스로 바꾸었지만 자본과 편리함에 밀려 소리 없이 사라져버린 곳이다. 사실 이 극장에 대한 추억이 있기엔 상당히 먼 곳이다. 내가 살던 동네에서 은평구면 거의 대각선으로 서울의 끝에서 끝이다. 한 번에 가는 버스도 없고 지하철로도 1시간 30분이 걸린다. 무슨 정성이 뻗쳤는지 스포츠 신문의 동시상영관 광고를 펼쳐놓고 서울의 구석구석을 돌면서 극장 순례를 하기도 했는데 도원극장은 제법 규모가 커서 반복해서 영화를 봐도 덜 눈치가 가는 곳이라 자주 찾았다.
차기 푸로 (왠지 이건 이렇게 써야 제 맛인 거 같다) 의 간판을 그리고 있는 손끝에는 한 때 인터넷을 떠돌며 우스개가 되었던 간판 사진들 마냥 전혀 닮지 않은 배우들이 있다. 짐자전거에 커다란 풀 통과 포스터를 가득 싣고 벽마다 포스터를 붙이는 모습도 새롭다. 멀티플렉스가 보편화되면서 사라진 것들이다. 몇 남지 않은 간판쟁이일지 모른다는 말에는 자부심보다 서글픔이 가득해 보인다. 수십 년 동안 간판을 그리면서 한 번도 마음에 든 적이 없다는 그 분의 얘기처럼, 누군가에게는 "그리면 그릴수록 어려운" 평생의 직업이었고 보는 입장에선 색다른 재미이기도 했을 거다.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동시상영관이다. 내가 살던 동네에선 목요일 오후가 되면 잔뜩 풀 먹은 포스터가 벽마다 붙여지고 금요일 밤 마지막 회의 상영을 마치고 나면 극장의 직원들이 총 동원되어 간판을 교체하곤 했다. 매주 반복되는 당연한 풍경을 지켜보며 나중에 크면 꼭 극장 사장이 될 거라는 꿈을 가졌다. 그래서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다. 이렇게 낡고 오래된 극장의 풍경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걸 볼 때면 기분이 묘하다. 그냥 안타까운 것만은 아니다. 내 꿈은 아직 유효한데 허공에 대고 그리는 꼴이다. 나는 낡고 불편한 극장을 많이 좋아했던 모양이다.
신종 플루 덕 좀 봤다. 아침부터 김명민으로 빙의를 해 연신 아픈 척을 해댄 끝에 반차를 내고 명동으로 향했다.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녀시대 사인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팬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소녀시대의 스케줄을 보면서 SM 이 ㅆㅂㄹㅁ 그만 좀 부려 먹어라, 저러다 얘들 쓰러지겠다, 혼자 분개한 적은 많아도 감히 스케줄에 따라다닐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일주일 전부터 마음에 담고 있었다. 처음부터 사인을 받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럴 사정도 안됐고 용기도 없었으니까. 언젠간 소녀시대를 실제로 봐야 되지 않나, 소녀시대 덕후로 산 2년 동안 늘 그게 걸렸다. 단독 콘서트도 손발이 오글거릴 거 같아서 안 가기로 마음먹은 터라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르는 일이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일종의 부채감을 해소하는 씻김이라고 해야 할까. 왜 하필 오늘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딱 꽂혔다.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유도 있었고.
예정된 사인회 시간 보다 두 시간 일찍 매장에 도착했다. 사인을 받으려고 줄 서 있는 사람 반,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사람 반이다. 전부 아이들이다.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되는 회사에 다니는 건 이럴 때 좋구나. 대놓고 아저씨티를 안 내도 되니 말이다. 일단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얼굴만 보면 다행이고 사진이라도 찍을 수 있으면 행운인거다. 그런데 매장 앞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리다 이대로 있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몰려드는데다 다들 뭔 놈의 키가 큰지 까치발을 해야 겨우 보일 정도다. 앞으로 파고들 배짱도 없다. 이렇게 되면 사진은커녕 얼굴도 못 본다. 생각한 끝에 아무래도 사인회 장소까지 가려면 매장을 통해서 보다는 비상문을 이용하지 않을까. 그게 정문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안전상 더 용이할 테고. 아까부터 쭉 지켜보니 사인 받을 사람들이 줄 서고 있는 스타벅스 옆의 문이 수상하다. 그런 생각이 들어 경호원의 반말 짓거리와 짜증 섞인 위협을 무심한 듯 시크하게 반사해주며 스타벅스 옆으로 갔다.
나름대로는 훌륭한 잔머리였다고 자부하며 뿌듯함에 20분가량을 서 있었다. 행여 영역을 침범 당할까봐 경계의 눈초리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그런데, 갑자기 저 쪽에서 와~ 하는 돌림 함성과 함께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더니 상황 끝이다. 축구에서만 위치 선정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평소에 머리 못 굴리던 사람은 이럴 때 금방 뽀록난다. 하필이면 내가 서 있는 반대쪽에서 온 거다. 뒤늦게 달려가 봤지만 검은색 스타크래프트 밴만 덩그러니. 소녀들은 흔적도 없다. 이런 젠장. 미단공주를 향한 황장군의 심정으로 매장 앞에서 뼈를 묻고 있었으면 얼굴이라도 볼 수 있었잖아. 대체 사인회를 4층에서 한다는 정보는 어디서 들은 거야. 왜 내가 그걸 철썩 같이 믿고 있었지. 그런 후회가 드는 찰나에 내 몸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여기에서 밀리고 저기에서 밀리며 명동 바닥을 유랑했다.
얼굴을 못 본 것도 서러운데 왜 이렇게 밀고 난리냐고. 두 시간 동안 서 있었더니 허리, 다리 안 아픈 데가 없잖아. 집에나 가야겠다, 싶었지만 내심은 선봉에 있는 사람들이 길을 터주고 뒤에 있는 사람들이 더 힘껏 밀쳐서 매장 안으로 떨어뜨려주길 바랬다. 마음속으로 소원을 말하니 그렇게 됐다. 난 가만 있는데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준다. 그 전까진 경쟁자일 뿐이었지만 이제야 소녀시대의 덕후라는 강한 연대감에 덥석 안아주고 싶을 지경이다. 제발 더 밀어줘~ 더더~ 한참을 이리저리 떠밀린 끝에 매장 안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 고개를 빼꼼 들어보니 멀지 않은 거리에서 순규가 보인다. 효연이도 있다. 가슴이 콩닥 콩닥. 몸의 중심을 최대한 발바닥에 밀착시키며 카메라를 꺼내 연사모드 시작. 또 떠밀려서는 아무런 용무가 없는 계산대 앞까지 돌격 앞으로. 한 3초정도 됐을까. 그게 전부다. 내가 처음으로 소녀시대를 본 전부.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선 모른다. 1층의 반을 막아놓고 통제를 했고 밖으로 나가는 것도 일이겠다 싶어 다 포기하고 2층으로 올라가 옷을 구경했기 때문. 30분쯤 후에 나와 보니 소녀시대는 가고 없더라는 거. 팬 사이트에 오른 후기들을 보면 그제 사인회를 단독 콘서트 스탠딩 사전연습, 혹은 지옥이었다고 표현을 하더라. 내가 날을 잘못 잡은 건지는 몰라도 오랜만의 사인회라 더 그랬던 모양이다. 나름 마음을 비웠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운 거리에서 얼굴을 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너무 순식간이라 믿기지도 않고 카메라를 들고 찍느라 얼굴도 잘 못 봤다. 근데 찰나가 또렷하다. 그 아수라장에서 고개를 드니 소녀시대가 보인 순간만 정지된 것 같다. 몸도 힘들고 탱구랑 윤아를 못 봐서 서운하지만 (사진을 보니 탱구 뒷모습이 찍혔다. 으하하;;), 기분만은 좋다. 그거면 충분하다. 뭘 더 바래. 좋으면 된 거지. 나도 나도. 반가웠어 얘들아~
1. 오늘 손석희 교수가 진행하는 100분 토론이 마지막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을 깜냥은 안 되니 뒤늦은 불평 한 마디. 프로그램이 10년을 맞이하는 날에 그만두는 것이 방송사나 손석희 교수에게나 볼품없는 논란을 종식하는 차선의 방법이긴 하겠지만, 아쉽다. 완곡하게 말해서 아쉽다지, 참 웃긴다. 별 거지 같은 일도 다 있다. 오늘 패널로 나오는 노회찬, 유시민도 오랜만에 방송에서 보게 되는 것 같고, 생글생글 거리며 사람 속을 뒤집는 나모씨를 참아내는 건 끔찍한 일이긴 하다만.
2. 자옥의 마음을 사기 위한 순재의 허세에서 시작돼 불쌍한 보석이 덤태기를 쓰고, 카드 값이나 메우려던 정음이 광수와 인나, 줄리엔에게 다단계 하청을 주고, 또 광수가 소개해 준 동네 슈퍼 주인, 놀러 온 아줌마, 줄리엔의 베트남, 인도, 프랑스 친구들, 인나의 아버지가 개성공단으로까지 외주를 준 종이학 만 마리 접기 프로젝트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냥 뜬금없이 생각났다. 방영된 지 2주 정도 되었으니 총 동원인원, 109명의 다국적 스태프들이 참여한 초 거대작, 종이 앤 학~ 만 마리가 완성되었을 법도 한데. 과장은 과장에서 끝날 때 제일 재밌는 법이긴 하지만 "고저 우리가 왜 이딴 걸 접고 있어야 해. 남조선 아새끼들 고저 배때지가 불러서리" 하며 성질내던 공단 노동자는 과연 다 만들긴 했을까 싶다. 뭐, 정해진 납품기일을 맞추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야 되는 게 노동자니. 며칠 전에 10 asia (난 왜 이 사이트 이름을 볼 때 마다 야동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많이 본 편도 아닌데;;) 에 김병욱에 대한 기사가 떴다.
좀 지난 소식인데, 그제 한 무가지에서 칠소복이 50주년이 되었다는 기사를 보게 됐다. 공식적인 행사가 14일에 홍콩에서 있은 모양이다. 칠소복을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하면, 같은 경극학원 선후배인 일 곱 명을 일컫는 말이다. 칠소복 출신들은 홍콩 영화에서 이름 꽤나 알렸는데 가장 유명한 사람이 성룡 (元樓), 홍금보 (元龍), 원표 (元彪) 다. 무술감독 원덕 (元德) 과 몸매만큼이나 날렵하고 얍쌀한 연기를 많이 했던 원화 (元華) 도 있다. 칠소복이 그들이 공연했던 경극의 제목이자, 극단의 이름이기도 한 만큼 엄밀히 말하면 일곱 명에게만 국한되는 별칭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그렇게 불린다.
기사를 보면서 제일 반가웠던 사람은 원표다. 함께 가화삼보라 불리던 성룡과 홍금보에 비해 왜 더 성공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 일거다. 게다가 홍콩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60년대에서 90년대 초반까지 로만 한정되어 있는 까닭에 최신 소식에 둔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참동안 원표가 출연한 영화나 이야기를 접하지 못했는데 기사와 사진으로나마 보게 되니 반갑다.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약간 살이 붙은 느낌이지만 칠소복 중에 가장 나이가 어려서인지 장난기 많은 날렵한 소년의 인상은 여전한 거 같다. 크게 드러나진 않아도 꾸준히 영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이고 말이다.
칠소복이 50주년이 되었다는 소식은 참 감동스럽다. 오랜 시간만큼이나 그들의 흔적이 깊어서 일거다. 개인적인 사정이야 일일이 알 길은 없지만, 경극학원 시절이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는 성룡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데 말로 못할 혹독한 시간이었을 거다. 단역과 스턴트를 전전하며 견뎠을 시기도 마찬가지였을 거고. 어떻게 하면 지긋지긋한 경극학원을 빨리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를 골몰하던 꼬마들이 이제는 중년을 넘어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장인들이 되었다.
영화제 13회를 맞이하며...
햇수로 10년하고도 3년이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긋지긋한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노동운동을 고민하고 노동자의 삶과 투쟁을 들여다보고 새로운 사회를 꿈꾸면서 시작한 노동영화제가 지나온 시간이다. 아쉬움도 많았지만, 해외 노동영화와 국내의 노동영화들을 소개하는 유일한 영화제로 중요한 역할들을 해왔다. 올 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때이다. 영화제의 생존의 위기를 느끼는 때이다. 많은 아쉬움을 남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제는 시작된다. 13년 전의 처음의 그 심정으로.. http://www.lnp89.org/xe/?document_srl=2120 http://www.lnp89.org/xe/?mid=newfest
따로 덧붙이기 보단 영화제 소개글과 링크로 대신.
1. 어제 <지붕 뚫고 하이킥> 에서 세경과 아빠가 어긋날 것처럼 보이던 장면에서 짜증이 확 솟구쳐 올랐다. 특별출연인 거 같던 세경 아빠가 모습을 비췄는데 해리가 전화기를 감춰서 전화를 못 받고 고장 나서 못 받고... 항상 지켜보고 있는 해리를 알면서도 전화기를 아무데나 놓는 세경의 무신경함도 못 마땅하고, 세경 아빠는 음성 녹음을 모르는 가 싶고, 제대로 못된 짓하는 해리 때문 (난 해리가 무슨 짓을 해도 밉지가 않다) 이 아니라, 상황 자체가 짜증이 난거다. 그게 작업의 정석인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자꾸 왜 이래. 짜증 나. 제발 이런 것 같고 장난치지 말라고 이 빵꾸 똥꾸야. 근데 마지막에는 기어이 눈물을 쏟게 만드는구나. 그냥 참 별 거 아닌데, 이 시트콤 제작진들은 사람 마음을 건드리는데 재주가 있는 거 같다. 이 빵꾸 똥꾸 같으니...
그건 그렇고 <지붕 뚫고 하이킥> 엔 왜 그렇게 상갓집에 간다는 설정이 많은 거냐. 어제도 이지훈이 뜬금없이 들어와서는 상갓집에 가야 되니까 검은 양복 좀 꺼내 달라는 얘기를 하더라. 현경이나 순재도 대 여섯번 그랬고. 가장 압권은 장례식장에서 방구쟁이 이순재의 엉덩이를 손으로 틀어막은 것이었지. 전에 <거침없이 하이킥> 에서도 그런 설정이 자주 나오긴 했는데, 더 기억을 더듬어 보면 김병욱 시트콤의 단골 패턴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웬만해서 그들을 막을 순 없다> 는 그런 식으로 결말을 짓긴 했지만... 누가 이 주제로 글 써놓은 건 없을까? 단순한 설정 치고는 너무 자주 나오는 거 같아서 말이다.
2. 짜식들.. 멋지구나... 오래들 버텨라. 그래야 7명이 뭉치는 날이 오지 않겠니. 이어지는 내용
'누구나 한번쯤은 그들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던 적이 있을 것이다.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엑스맨, 수많은 다채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그 이름은 바로 슈퍼히어로. 현실이 팍팍할 때 마다 사람들의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됐던 존재들이다.'
<당신의 슈퍼히어로> 를 보면서 나만의 슈퍼히어로가 있었을까 생각해 봤다. 얼른 떠오르지도 않고 한참을 생각해도 이렇다 할 슈퍼히어로가 없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슈퍼히어로를 생산, 보유하고 있다는 미국의 슈퍼히어로들은 이름만 익숙할 뿐 대부분 낯선 영웅들이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주말 오후에 방영해주던 <스파이더 맨> 이나 <6백만불의 사나이>, <헐크> 같은 TV 시리즈를 손꼽아 기다리긴 한 거 같지만 그네들을 보고 꿈과 희망과 용기가 샘솟은 적도, 붉은 보자기를 목에 둘러 묶고는 지붕을 힘차게 날랐다는 전설적인 무용담 따위도 없다. 단지 비키니 차림이었다는 이유로 <원더우먼> 을 좋아했는지는 더더욱 생각나지 않는다. 무미건조한 유년기를 보냈나 싶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뜬금없이 <소년 007> 이란 만화가 떠올랐는데, 일종의 탐정물인 이 만화는 일반적인 슈퍼히어로와는 별 관련이 없다. 슈퍼히어로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은 빈약하기만 하다.
<당신의 슈퍼히어로> 는 많은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거나, 이름만으로도 전설이 되어버린 슈퍼히어로를 소개해주는 척 하면서 미국에서 작게나마 인기를 얻고 있다는 홍길동의 그래픽 노블에 대해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더 나아가서는 한국에도 슈퍼히어로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한다. 슈퍼히어로하면 당연히 미국을 떠올리게 돼서 그런지, 이 기회에 슈퍼히어로에 대해 구경 좀 하자, 라는 기대를 품은 나로서는 좀 실망스러웠지만 재미있기도 했다. 새로운 홍길동 영화가 개봉 대기 중이거나 말거나, 슈퍼히어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라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국의 슈퍼히어로가 있었나 갸우뚱 했던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라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작업이 무의미하진 않을 거다. 홍길동의 그래픽 노블을 본 미국인에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물어보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가 튀어 나오는 걸 보면 어딜 가나 사람들의 정서는 비슷한 모양인가도 싶다. 일부 한국산 슈퍼히어로의 면면이 표절의 흔적과 일치한다는 건 물론 씁쓸한 일이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슈퍼히어로에 열광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초인적인 힘을 가진 슈퍼히어로와 현실을 결부시켜 얻어낼 수 있는 대답이란 뻔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이 다큐 좀 촌스럽다. 미국에서 불어온 홍길동의 재발견으로부터 시작해 한국의 슈퍼히어로를 거슬러보며 양국의 슈퍼히어로를 비교하는 것까지는 그럭저럭 볼 만 했는데 은근슬쩍 우위를 논하는 건 안 하는 게 나을 뻔 했다. 그런 식으로 얻어낼 수 있는 감상은 참 헛헛하지 않은가. 이왕 그렇게 나갈 거라면 <주먹대장> 과 <각시탈> 을 불러내 슈퍼히어로의 범주에 넣은 김에 그 쪽을 자세히 다루는 게 더 흥미로웠을 수도 있었을 거다. 어쨌든, 서양의 슈퍼히어로 보다 이타적이지 않고 인간적으로 친밀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고 고뇌하는 슈퍼히어로, 그게 한국 슈퍼히어로의 공통된 실체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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