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희미해져 버린 기억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되살리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동반해야 하는 일이다. 늘 가슴속에 아름답고 벅찬 기운으로 남아 있는 게 지나간 기억이지만 막상 현실에서 바라보는 추억은 지나간 시간만큼이나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현실은 아름다웠던 추억이 비루해 지는 걸 원하지도 않는다. 과거의 기억이 현실과 충돌하는 순간 더 이상 추억은 아름답지도 않고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해돌이 대모험> 을 지금 다시 보는 건 추억의 앙상한 실체를 확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납북된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소년 해돌이가 자신을 하나님의 딸이라고 소개하는 천사 예삐와 함께 아버지를 찾으러 북한에 간다는 이야기의 <해돌이 대모험> 은 김청기 감독의 <똘이 장군> 시리즈와 함께 대표적인 냉전 시대의 반공 만화영화다. 두 편 모두 정부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반공만화라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설득하고 주입하는 방식에서는 조금 다르다.
<똘이 장군> 시리즈가 철저하게 단순한 선과 악의 구도 속에 김일성과 북한군을 살찐 돼지와 승냥이 떼로 의인화 하거나 북한 주민들을 독재에 순응하는 무기력한 존재로 묘사했다면 <해돌이 대모험> 은 해돌이가 아버지를 찾는 과정 속에 북한 주민의 참혹하고 빈곤한 삶을 목격하게 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중간 중간 삽입되는 사진과 예삐의 친절한 설명, 그리고 몸소 북한의 생활을 체험하는 해돌이는 김일성 독재 체제의 공산주의가 얼마나 사람을 착취하고 억압하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북한의 실정에 대한 다큐식 증언이나 북한 주민을 김일성과 공산주의의 무고한 희생자로 여기고 구원해 주어야 한다는 시각은 반공 만화로서 교육적 효과를 노린 나름의 방법이지만, 여타의 반공만화들과 마찬가지로 대상이 분명한 증오와 적개심이 여과 없이 표출되어 있다.
북한 주민들에게 측은지심을 느끼던 해돌이가 금빛으로 칠해진 김일성의 동상 앞에서 말다툼을 벌이던 북한 소년을 태권도로 쓰러 눕히면서 "우리 대한민국 소년들은 모두 이 정도의 실력들은 갖고 있다고" 라고 소리치는 장면은 결국 북한과 공산당은 때려잡아야 할 악의 무리이고 자유민주주의체제 아래의 대한민국은 얼마나 위대하고 살기 좋은 나라인가를 재차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해돌이가 닥치는 대로 전투기와 탱크를 파괴하는 모습을 보며 정의감에 불타하고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을까. 그것이 멸공과 반공 이데올로기를 목숨처럼 여기면서 살아가야 했던 시절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기는 했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들에게 강요했던 낡은 이데올로기의 허상만큼이나 빛바랜 추억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조금은 안타깝고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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