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를 좋아하는 광적인 소녀들의 좌충우돌 소동극 [당신 손을 잡고 싶어 - I Wanna Hold Your Hand] 는 로버트 저멕키스의 감독 데뷔작이다. 자신이 비틀즈에 열광했던 기억을 토대로 같은 영화과 동기였던 밥 게일과 각본을 썼고 그들의 단편 영화를 본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자로 나섰다. 본격적으로 저멕키스, 게일, 스필버그의 파트너 쉽이 시작되는 영화인 셈인데 저멕키스와 게일은 스필버그에게 [1941] 의 각본을 넘겨주면서 데뷔작을 만들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신뢰도 얻었다. [중고차 소동] 과 [로맨싱 스톤] 의 성공에도 그들의 머릿속에만 들어있던 [백 투 더 퓨쳐] 의 가능성 (거의 모든 영화사들은 황당무계 하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거절했다고 한다) 을 믿어준 사람은 스필버그 뿐이었다.
[당신 손을 잡고 싶어] 는 초기의 로버트 저멕키스 코미디 영화답게 악의 없는 주인공들이 벌이는 슬랩스틱 코미디로 가득하다. 광적으로 비틀즈를 좋아하는 로지 (Wendie Jo Sperber) 와 남자 친구를 무서워 하는 소심한 팸 (낸시 알렌), 비틀즈의 음악은 인간의 심성을 파괴하는 악마의 음악이라고 비판하던 제니스 (Susan Kendall Newman) 와 얼떨결에 장의차를 빌려(?)주는 장의사집 아들 (장의차가 롤스로이스였기 때문에 무사히 호텔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설정을 위해 존재하는 아이 같다), 그리고 여자를 꼬시기 위해 끼어드는 껄렁 껄렁한 아이들은 청춘 영화의 전형적인 아이콘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64년은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고 난 직후였고 베트남 전쟁이 본격화된 시기였지만 동시에 비틀즈의 열풍이 몰아닥친 시기이기도 했다. <Please Please Me>, <I Want to Hold Your Hand>, <Love Me Do> 등의 연속적인 히트로 비틀즈는 영국 뮤지션들이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던 미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고 당시 최고의 인기 TV프로였던 에드 설리반 쇼 (Ed Sullivan Show) 에 출연하기 위해 미국 땅을 밟는다. 그야말로 아이들은 미치고 팔짝 뛴다. 비틀즈에 관한 모든 것들을 소유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들은 하루 종일 음반가게에 죽치고 앉아 어떻게 하면 에드 설리반 쇼의 방청권을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한낱 우스꽝스러운 외모의 틴에이저 밴드에게 열광하는 것이 못 마땅한 남자 아이들도 여자를 꼬시기 위해 비틀즈처럼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오직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비틀즈, 비틀즈, 비틀즈뿐이다. 거기에 자동차만 있다면 금상첨화고 온갖 고난을 헤치고 뉴욕으로 가는 건 당연지사.
비틀즈가 묵고 있는 호텔 앞에서 어떻게 하면 호텔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와 에드 설리반쇼의 방청권을 얻을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 아이들의 소동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코미디의 연속이고 비틀즈에게 바치는 '연서' 같다. 아이들은 비틀즈의 팬이 던져준 가발을 뒤집어쓰고 비틀즈로 변장해 호텔을 무사통과하기도 하고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던 경찰의 바리케이드를 완력으로 제친다. 호텔 직원과의 쫓고 쫓기는 사투 끝에 비틀즈의 방에 잠입하게 된 로지는 비틀즈가 썼던 포크와 접시를 부여잡고 감격스러워 하다 링고 (혹은 조지 해리슨) 와 마주치게 된다. 대중문화를 혐오하고 사회 참여를 역설하던 제니스가 막상 비틀즈를 보게 되자 좋아하는 모습은 낯간지러운 감상이나 억지스런 비약이 아니라 사심 없는 낙관주의가 주는 유쾌함이다. 여기에 시종일관 흘러나오는 비틀즈의 초기 히트 넘버들은 보너스다.
스필버그 사단의 우등생이라는 별칭처럼 [백 투 더 퓨쳐] 삼부작을 훌륭하게 완성시킨 이후 저멕키스는 스필버그와 유사한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포레스트 검프] 와 [콘텍트], [캐스트 어웨이] 로 이어지는 영화들은 이전의 저멕키스의 영화들과는 사뭇 다르다. 심각해진 드라마 속에 첨단 디지털 효과를 엮어가며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것이나 90년대 이후 저멕키스와 스필버그가 선호하는 배우가 톰 행크스라는 것도 묘하게 일치한다. 저멕키스의 초, 중기 영화들은 가볍고 경쾌하지만 경박하지 않은 드라마와 특수 효과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기본기가 충실한 영화들이었고 무엇보다 유머를 잃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로버트 저멕키스는 스필버그를 벗어나려는 욕심이 지나치거나 아니면 스필버그처럼 되는 게 평생 소원 인 듯 보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백 투 더 퓨쳐] 와 [누가 로저래빗을 모함 했는가] 를 만들 때가 가장 좋았다.
덧
오래된 기억에 의해 쓰여진 글이므로 다소 부정확한 정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