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황학동 벼룩시장을 다녀왔다. 청계천 재개발이 한창일 때 이후로는 처음이니 꽤 오랜만의 방문이다. 늘 하던 대로 청계 9가부터 돌기 시작했다. 초입에 들어서 있던 보일러와 공구를 파는 가게는 여전하다. 청계천을 개발하면서 일괄적으로 바꾼 녹색 간판들이 심하게 거슬리긴 했지만 언제나 저길 지나치면서 들었던 "대체, 이렇게 많은 가게는 다 뭘 먹고 사는거야....?" 라는 궁금증 만큼이나 변한 게 없어 보여서 조금은 다행이다 싶다. 그런데 그런 생각도 잠시. 즐겨 찾던 비디오, 중고 음반 가게들이 몰려있던 곳은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졌거나 업종 변경을 했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가게도 이상하리만치 이전의 활기가 없어 보였다. 늘 노점상과 오고 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던 길가도 한가하다. 너무 오랜만에 와서인지, 아니면 조금은 변해버린 모습에 낯이 설어선지 눈에 띄는 건 황학동에서 왕십리까지 이어지는 곱창가게들뿐이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청계천이 재개발되면서 노점상은 동대문 운동장으로 쫓겨나다시피 떠나갔고 상인들의 생활 터전이자 일터였던 삼일 아파트는 일층과 이층만 남기고 대부분이 철거되었다. 주변에 밀집해 있던 낡고 오래된 건물은 거대하고 화려한 고급 아파트로 탈바꿈되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청계 8가라는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비교적 세월의 흐름을 비켜갔던 것에 비하면 참으로 급격한 변화인 셈이다.

일명 도깨비 시장이라고도 불리는 곳. 아무리 오래되고 망가진 물건이라도 상인들의 손을 거쳤다 하면 감쪽같이 새것이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처럼 황학동 벼룩시장은 무언가 기묘한 느낌을 준다. 행여 누가 살까 싶을 정도로 낡고 볼품없는 골동품과 잔뜩 헤지고 때가 묻은 헌옷 가지들, 하루 종일 샅샅이 훑고 지나가면 숨겨진 보석을 찾을 수 있었던 중고 음반, 비디오가게, 미로처럼 얽혀있는 골목을 찾아 들어가면 아직 쓸 만한 가전제품도 만 원짜리 몇 장으로 살 수 있던 벼룩시장은 세상에 없는 것만 빼고는 다 판다던 물건의 가짓수 만큼이나 여러 개의 시간이 흘러 들어와 그 안에서 느릿한 삶의 흔적을 남기는 곳이었다. 주말이면 주변 도로까지 점거한 상인과 구경나온 사람들이 뒤섞이고 진작에 수명이 다해 버려진 물건들이 새로 쓰이기 위해 아무렇게나 널 부러져 있던 무질서 속에는 수십 년간 자생적으로 이어져 내려온 떠들썩한 활기와 질긴 생명력이 있었고 대낮부터 술판과 도박판을 벌이던 장사꾼의 게으름마저도 이방인에겐 색다른 활력이 되었던, 그렇게 황학동 벼룩시장은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만사와는 조금은 무관해도 되는 곳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곳곳이 공사 중이거나 예정이다. 들리는 얘기로는 나머지 구역도 왕십리 뉴타운과 연계해 같이 개발될 것이라 한다. 이미 '개발' 로 망가트린 청계천으로도 모자라서 아직도 때려 부술게 더 남았을까. 하긴 서울 시내 어디를 가도 일 년 내내 공사 중인 건 마찬가지다. 주위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무자비 할 정도로 통일성만 강조한 끔찍한 간판을 쳐다보면서 어느 간판업자만 돈을 많이 벌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결국, 개발로 얻어지는 막대한 이익은 소수에게 돌아가고 나머지는 소외되기 마련이다. 오래되고 낡은 것은 부숴야 한다는 개발 만능주의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아무런 문화적, 정신적 유산을 남기지 못 할뿐 아니라 비인간적이다. 문득, 삼일 아파트가 철거되기 전에 이제 더는 갈 곳이 없다며 전기와 물도 없이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던 어느 가족의 모습이 떠올랐다. 개발이란 명목으로 강제폐기처분당한 황학동 벼룩시장을 보면서 철거민들을 떠올리게 된 건 그냥 우연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