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인권영화제 개막작인 <차이나 블루 - China Blue> 는 돈을 벌기 위해 대도시로 상경한 자스민이라는 소녀의 고단한 하루하루를 보여준다. 이제 자스민은 16살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중학교 3학년이 되는 나이지만 학교 대신 청바지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한다. 아무런 기술도 없는 자스민이 봉제공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루종일 봉제된 옷에서 실밥을 뜯어내는, 일명 시다뿐이다. 생전 처음 고향을 떠나 생활하게 된 자스민은 모든 것이 낯설다. 조금이나마 집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에 부풀어 있는것도 잠시, 현실은 만만치가 않다.
자스민이라는 어린 소녀의 일상을 통해 중국 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차이나 블루> 는 쉽게 분노하지 않는다. 선동하지도 않는다. 그들을 동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도 않는다. 자신을 출세한 촌뜨기라고 소개하는 리펭 공장의 사장과 자스민을 비롯한 공장 노동자들을 오가며 자본이라는 체제의 근본적인 모순에 대해 생각하기를 권한다. 주 7일 노동, 하루에 14시간 이상을 일하는 살인적인 노동시간, 최소한의 수당도 받지 못하는 철야작업, 기약 없는 임금 체불, 노동자의 단체행동 탄압, 작업 감시 등, 자스민은 또래의 아이답게 힘든 작업 틈틈이 자신만의 상상을 꿈꾸지만 당장 현실은 뼈가 빠지도록 일을 해도 약을 사 먹을 돈도 없다.
리펭 공장의 사장은 날로 치열해져 가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노동자들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얘기한다. 공장이 돌아가지 않으면 일자리도 없다는 것이다. 배후에는 무턱대고 단가를 낮추라고 압력을 넣는 다국적 기업과 그것을 묵인하는 중국 정부가 있다. 그들은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알면서도 방관한다. 서구 바이어들의 형식적인 시찰은 여론 무마용 생색 내기와 그것을 통한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서다. 노골적인 해고의 위협 속에서 잘 훈련된 앵무새처럼 좋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는 노동자들의 삶은 "그들이 좋다면 좋은거겠죠....." 라는 바이어의 말처럼 정말 좋은 것일까.
악순환은 반복된다. 다국적 기업들은 좀 더 단가를 낮추라는 자신들의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더 이상의 주문은 없을 것이라고 위협을 가한다. 주문을 따내기 위한 최소 가격의 입찰, 무리한 납품 기일을 맞추기 위한 모든 피해는 곧장 노동자들에게로 온다. 그럼에도 사장은 가장 많은 이익을 가져가는 건 바이어들이라고 투덜거린다. 온갖 궂은일은 자신들이 도맡아 하는 데도 정작 이익은 제일 조금 가져간다는 것이다. 그래도 계산기를 두들기면서 한 달에 20만 벌의 청바지를 만들어 4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있으니 꽤 많이 남는 장사라고 흐뭇해한다.
<차이나 블루> 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 (노동자들) 의 밝은 표정과 그것을 최소한의 직업관도 가르칠 수 없는 무식한 놈들이라고 생각하는 징글맞을 정도로 천민한 자본가의 속성을 포착해 낸다. 돈을 벌기 위해 인권을 제약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본가와 그런 자본에 이용당하고 소외되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감정적인 분노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구조를 환기해 낸다.
오빠의 학비를 보태기 위해 대학을 포기한 오키드와 보증금으로 묶인 첫 월급을 받지 못해 모두가 고향으로 떠난 설날에 혼자 기숙사에 남아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실컷 잠만 자고 싶다고 금붕어에게 하소연하는 자스민은 이제 막 자본주의라는 유토피아에 진입한 중국의 다른 모습이자 더 나은 삶을 보장해준다고 부르짖는 신자유주의의 초라한 현실일 것이다. 또한,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가 거쳐 왔던 과정이기도 하다. 자스민은 늘 궁금해 한다. 대체 저렇게 크고 비싼 청바지는 누가 입는 것일까? 작업반장 몰래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 내려 간 글을 청바지에 넣어 보내는 자스민의 편지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것이지만 누구도 쉽게 답장을 하기 어려운 편지일 것이다.
덧붙임
맨 위 사진의 왼쪽은 14살의 리핑, 오른쪽은 영화의 주인공 자스민이다. 연일 계속되는 철야작업에서 졸지 않기 위해 눈꺼풀을 빨래 집게로 잡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