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급적이면 월드컵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결국 잔치에 재를 뿌리는 이야기만 할 것이 뻔한데다 그래봤자 이상한 놈 취급 받기 십상이다. 결정적으로 그리 건설적인 비판도 되지 못하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해봤자 뭐하겠나. 평소처럼 그냥 그러거나 말거나 무관심 한 게 최고다. 그런데 오늘 무비위크를 읽고 살짝 배알이 뒤틀려 버렸다. 그렇다. 순전히 이 글을 쓰게 된 건 배가 아퍼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이번 주 무비위크에는 월드컵 관련 글이 두 개가 실렸다. 하나는 편집장이 쓴 글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 필자의 글이다. 매주 붙박이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고정 지면이긴 해도 편집도 절묘해서 잡지의 앞과 뒤에 보란 듯이 자리를 잡고 있는 두 개의 글은 마치 이번 주 무비위크를 월드컵 특집호처럼 보이게 한다.
편집장의 글은 지난 한일 월드컵에 대한 이런저런 소회를 늘어놓고는 있지만 결론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월드컵 열기에 몸을 맡기고 미친 듯이 응원하라는 것이었다. 얼른 빨간 응원복을 챙기고 꼭짓점 댄스를 배워서 광화문 네거리로 뛰쳐나가라는 것이다. 이 정도는 애교다. 제목부터 선정적인 '월드컵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라는 외부필자의 칼럼은 아예 한 술 더 뜬다. "이제부터 슬슬 몸을 풀면서 월드컵 응원에 대비하는 것이 국민 된 도리" 이며 "우리가 6월에 꼭 해야 할 일" 이라고 못 박고 있다.
대체 언제부터 영화, 연예잡지가 국민들이 해야 할 일을 정해놓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르치려 들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지금이 월드컵의 시기이고 평소 억눌려 있던 감정을 이번 기회에 마음껏 배설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지만 굳이 영화, 연예잡지까지 나서서 집단에 동참하라고 선동하고 부추기는 건 아무래도 심한 오버가 아닌가. 칼럼을 쓴 사람의 말대로라면 난 전혀 국민된 도리를 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월드컵을 짝사랑하다 못해 집단 스토킹을 하는 건 돈 독 오른 방송사와 이동통신사 만으로도 충분하다. "방문 잠궈 놓고 꼭짓점 댄스를 배우" 거나 말거나, "기업 홍보물로 치장된 광장에 모여 새로운 응원가를 부르" 거나 말거나 그건 '당신' 이 알아서 할 일이지 '우리' 가 해야만 하는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