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사사건건 통제받고 무시당하는 것이 너무나 갑갑하고 자존심 상했다. 이것도 하지 마라 저것도 하지 마라. 이것만 해라, 저것만 해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어중간한 시절에는 대학만 들어가면 맘대로 해도 된다는 단서 때문에라도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냥 어른이 되면 뭐든지 내 맘대로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고 나니 그런 게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것은 많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것은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어렸을 때 보다 더 많은 것들이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않니, 라고 스물 스물 발목을 부여잡는다. 어른이 된다는 건 책임만 있고 결과는 없고 자신감 대신 두려움만 느는 것이다. 그럼에도 혼자 모든 걸 견뎌야 한다. 동시에 어른이 되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은 문득 예전과 다른 나를 보게 된다. 때론 그것은 돌이킬 수 없음에 대한 그리움과 탄식이기 보다는 완전히 어른의 세계에 적응했음을 재차 확인해 주기도 한다.
한 5년 전쯤에 남산에 있는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에서 <로보트 태권브이> 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아직은 <로보트 태권브이> 가 DVD로 나오거나 대대적인 복원을 하기 전이었으므로 조악한 화질의 비디오테이프로 감상하는 것이었지만 어릴 적의 영웅이자 우상이었던 태권브이를 다시 보게 된다는 기대감에 조금은 흥분했다. 객석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과연 정신없을 정도로 빠른 일본 애니메이션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만들어진 지 수십 년이 넘은 태권브이를 보고 좋아할 수 있을까. 내심으론 그런 노파심도 들었다. 어쨌든 언제 들어도 몸과 마음을 들썩이게 하는 주제가를 들으며 설레이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에게 들었던 노파심은 내게로 향했다.
다시 본 <로보트 태권브이> 는 어렸을 때 보았던 태권브이가 아니었다. 예전에는 굳이 따질 이유와 필요도 없었던 부분들이 눈에 밟히는 것이다. 흥미진진하던 이야기는 산만하고 지루했고 멋있게만 보이던 태권브이의 동작은 관절 인형 마냥 굼뜨고 반 박자씩 끊어진다. 고색창연하고 문어체인 대사를 필요이상으로 진지하게 연기하는 성우들의 목소리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색감이 뭉개지고 흐름을 끊어버리는 기술적인 부분의 조악함도 거슬렸다. 재능 있는 과학자였던 카프 박사가 남다른 외모로 인해 멸시와 차별을 당하면서 악당으로 변신하는 과정의 비극은 산산하기까지 해서 놀라움을 주기도 했지만 <로보트 태권브이> 는 거의 모든 면에서 재미가 없었다. 악당 로봇에 밀려 고전을 하다가 주제가가 나오면 힘을 얻곤 하던 태권브이의 발차기가 더 이상 통쾌하거나 신나지가 않는 것이다. 심지어는 영화를 보는 중간에 잠시 졸기까지 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적잖이 실망을 했다. 정말 방금 본 태권브이가 어린 시절 주제가를 따라 부르면서 좋아하던 그 태권브이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막상 아릿하게나마 대단하게 여기던 태권브이가 실은 그렇지 않 (을지도 모른) 다는 사실에 당황했고 한 편으론 씁쓸했다. 막연히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좋았던 추억과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쌉싸래한 현실이 마주하면서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그렇다고 어릴 적의 추억이 망가지는 걸 손놓고 바라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순간, 조금 전보다 분주하게 머릿속이 회전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기 시작한다. 그저 태권브이가 나오는 것만으로 좋았던 어린 시절의 순수한 감동과 흥분을 고스란히 느끼기에는 지금의 난 순진한 꼬맹이가 아니라는 것을 빠르게 인지하고 납득한 것이다. 그렇게 인정하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순식간에 어린 시절에 대한 알 수 없는 부채감이 줄어들었달까. 그렇다고 씁쓸한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어도 재빨리 현실을 인정하고 납득의 시간이 줄어든 것은 그만큼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확실하면서도 또 다른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