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괴물 - The Host, 2006> 은 여러모로 용감한 영화로 기억될 만하다. 우선, 괴수영화라는 장르의 터줏대감인 심형래의 <디워> 가 언제 완성될지도 모를 만큼 지지부진한 행보를 보이는 가운데 비교적 저렴한 (?) 제작비인 100억으로 본격적인 괴수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건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기술적인 부분에 한해서다. <에이리언> 시리즈나 <고질라> 같은 영화를 제외하면 할리우드에서 괴수 영화는 적은 제작비로 본전 이상을 뽑을 수 있는 하위 장르에 가깝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할리우드에서만 가능한 얘기지 한국에서의 상황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동안 관심을 기울일만한 여건이 부족했던 탓에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제작 노하우가 전무한 상태에서 기껏해야 평균적인 한국영화 두 세편을 만들 수 있는 제작비로 괴수 영화에 도전했다는 것은 거의 무모함에 가깝다. 그러나, 막상 영화가 보여주는 기술적인 성취는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다. 상당부분 '웨타 워크샵' 과 '오퍼너지' 의 힘을 빌렸다고 하더라도 한국영화에서 전혀 어색하지 않은 괴물을 보게 되는 것은 아주 색다른 경험이다. 특히 하수도 내에서 괴물의 움직임과 현서가 세주의 보호자가 되면서 긴장을 증폭하는 장면은 시각적으로나 심리적으로도 꽤 근사하다. 유난히 튀어 보이는 마지막을 제외하면 거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유연한 괴물의 움직임은 돈을 들인 만큼, 어쩌면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이 정도의 시각적인 쾌감을 보여준 영화가 없었다는 점에서 그 이상의 효과를 보여준다.
보통 할리우드 영화의 괴물들이 어두컴컴한 밤에 돌아다니는 것에 비해 <괴물> 의 괴물은 아주 용감하게도 백주의 한강을 활보한다. 괴물이 아지트로 삼고 있는 원효대교 밑의 하수구나 세진, 세주 형제를 습격하는 장면을 제외하면 거침없다. 유난히 괴물 영화에서 밤 장면이 많은 이유는 아무리 특수효과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는 해도 아직까지는 완전할 수 없는 기술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궁여지책이기도 할 것이고 어딘가 음침하고 끈적거리는 괴수 영화 특유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다. 힘들게 태평양을 헤엄쳐 간 <고질라> 가 그토록 야행성을 고집해야 했던 이유도 그래서다. 그에 비하면 <괴물> 의 괴물은 대낮에 모습을 드러내고 다리 난간에서 공중회전 돌기를 하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는 장시간의 클로즈업도 마다하지 않는다. 물론, 태양이 내리쬐는 맑은 날이 아니라 흐리고 비가 오는 날씨이긴 하지만 되도록이면 괴물을 어두컴컴하게 보여준다거나 특정시간 이상 노출시키지 않는다는 불문율과도 같은 철칙을 깨는 것과 같다.
다르게 말하면 <괴물> 이 괴수 영화 본연 (?) 의 긴장과 공포감 조성에는 별반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도 된다. 앞서 얘기했듯이 <괴물> 은 일반적인 괴물 영화의 틀에서 많이 벗어난다.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강하게 충격을 주는 전형적인 도입부는 <괴물> 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어떻게 보면 괴물의 등장은 너무 밋밋하거나 난데없기까지 한데 최소한의 궁금증이나 긴장 없이 단번에 모든 것을 보여준다. 한강 둔치의 평화를 깨는 괴물의 살육은 우악스럽긴 해도 무자비하지 않고 피와 살점은 거의 보이지도 않는다. 이건 등급을 낮추기 위한 궁여지책이기 보다는 애초부터 그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주인공인 강두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어딘지 모르게 삐거덕 거리고 아슬아슬해 보이던 강두 가족은 평범한 사람이 고난을 겪으며 영웅으로 변모해간다거나 공동의 적을 물리치는 과정을 통해 잃었던 가족애를 되찾는다는 것과도 거리가 있다. 제작비가 100억이 넘는 거대한 상업영화에서 적극적으로 장르의 관습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무능력하거나 다른 야심이 크거나. 그래서 <괴물> 이 용감한 또 다른 이유는 괴수 영화라는 장르의 콘셉트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 어쩌면 실재하지 않는 괴물을 묘사하는 것보다 더 큰 모험이다.
한강 둔치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아버지 (변희봉) 에 얹혀사는 강두 (송강호) 는 마땅한 직업 없이 놀고먹는 한량처럼 보이지만 실은 현실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어 보일 만큼 모든 면에서 어수룩하다. 초반에 괴물이 등장하고 모두가 살겠다고 도망치는 와중에도 앞뒤 가리지 않고 괴물과 싸우고 혹시 괴물과 접촉하지 않았냐는 관계자의 말에 그 놈 피가 살짝 묻었다고 자진해서 이야기 할 정도로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잘 자고 툭하면 넘어지는 강두는 그 때문에 동생들에게도 무시당하고 딸 현서 (고아성) 를 괴물에게 잡혀가게 한다. 아버지가 괴물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도 강두의 어수룩함 때문이다.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몸 바쳤다는 동생 남일 (박해일) 은 세상에 대한 불만을 냉소적으로 툭툭 쏘아대기만 하는 무기력한 백수이고 양궁선수 남주 (배두나) 는 비록 오빠들처럼 심각한 사회적인 장애가 있지는 않아도 느긋하고 결단력 부족한 천성 때문에 중요한 순간에 일을 그르치고 만다.
각자 있어도 모자란 그들이 한데 뭉친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희생자 합동 분향소에서의 소동, 강두를 무시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일장 훈계에 꾸벅 조는 자식들, 그에 굴하지 않고 할 말 다 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다. 그렇게 물과 기름같던 가족들은 현서를 구하기 위해 단합되었다가 금방 와해되고 만다. 현서를 구해야겠다는 마음만 있지 아무런 대책도 없는 강두 가족은 티격태격 하다 뿔뿔이 흩어지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무엇 하나 내세울 것도 없고 평범하게 살기에도 부족해 보이는 사람들이다.
지리적으로 서울의 중심이라는 한강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괴물에 맞선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지지리도 못나고 궁상맞은 그들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는 이유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고 아무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서다. 때문에 영화는 괴물이 도시를 파괴하거나 강두 가족을 영웅으로 만들려는 생각도 없다. 변변한 무기조차 없고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강두 가족은 미군이 버린 독극물에 의해 돌연변이가 되어버린 괴물에게 현서를 구하는 것을 넘어서 무능하고 안이한 공권력, 사회적인 약자를 더욱 약하게 만드는 불합리한 시스템이라는 또 다른 괴물에 맞서서 가족을 지켜내야 하는 지난한 싸움을 벌이게 된다. 결과는 참 서글프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거나 영웅적이기는 커녕 보통에도 미치지 못하는 그들은 불의의 사고 앞에서 가족을 지키려는 본능마저 외부의 힘에 의해 산산 조각나고 만다. 뒤늦게 괴물을 불태우고 찔러 죽인다고 해도 가슴에 맺힌 그 한은 씻을 길이 없다. 그렇게 때론 억울하게 당하고 처절하게 싸워가면서 사는 것이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질긴 운명이긴 하겠지만 현서의 주검 앞에 멍한 채로 주저 않는 모습은 참으로 처연하다.
도처에 깔려있는 블랙 코미디는 다양한 정치적 (예를 들면 실체도 없는 바이러스를 찾아내기 위한 미국의 비열한 수작이라든지, 어머니가 없는 강두 가족사에서 현서가 세주의 보호자가 되면서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 채운다는 식의)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고 부조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조롱하고 비꼬는 쾌감의 파괴력도 꽤 크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봉준호 감독이 누차 강조했던 "본질적으로 <괴물> 은 순수 오락의 결정판" 이라는 것에서 약간의 괴리감이 존재한다. 할리우드식의 액션과 긴장을 기대한다면 <괴물> 은 다소 엉뚱하거나 지루한 영화가 될 가능성이 많다. 칸 영화제 이후 증폭된 <괴물> 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은 맞지만 필요 이상으로 과장된 측면도 없지 않다.
덧붙임
1. 영화를 보고 나서 괜한 노파심이 들었다. 영화 속에서 모든 사건의 근원이 자기들 잘못을 숨기려고 있지도 않은 바이러스가 있다고 지X하는 미군 (미국) 때문이고 봉준호 감독이 민노당원이라서 반미, 빨갱이 영화라고 지X발광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워낙 여러 가지로 하 수상한 시절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한국 사회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지 못하다는 불신이 큰 탓이다. 2. 배우들의 연기는 다 좋다. 딱히 누구를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3. 미군 의사와 통역하는 사람이 대화할 때 자막이 나오다 말다 한다. 디지털은 문제가 없고 필름에서만 그렇다고 한다. 강두처럼 no virus 라는 말만 알아들으면 되니 큰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실수는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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