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혹은, 이사의 어려움 다음 달에 이사를 하게 되었다. 집안 사정이라 자세히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더 좋은 집으로 넓혀 간다거나, 하는 이유로 이사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자주 이사를 해야 하는 아버지의 직업상 어렸을 때부터 많이 이사를 했다. 대충 세어 봐도 열다섯 번은 되는 것 같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온 게 1998년이니 꼭 8년 만에 다시 이삿짐을 싸는 셈이다. 이사라면 인이 박힐 정도로 익숙한 것인데도 언제나 이삿짐을 싸고 푸는 건 참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지금이야 포장이사라는 게 있어서 전문 업체에서 알아서 다 해준다고 하지만 한창 우리 가족이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며 다닐 때에는 손수 이삿짐을 싸야했다.
직접 이삿짐을 싸 본 적이 있다면 하나하나 물건들을 꺼내어 상자에 넣고 다시 그것들을 풀어놓고 정리하는 것이 얼마나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인지 알 것이다. 대충 짐을 풀어놓고 정리하는 데만 하루가 걸리고 원상복구 하려면 적어도 이삼일은 걸린다. 보통 일이년 정도 지내다 이사를 가야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나중에는 그것도 귀찮아서 아예 짐을 풀지 않았다. 당장 절실히 필요한 게 아니면 괜히 풀어놓아봤자 나중에 귀찮고 힘들기만 해서다. 이제 아버지도 정년퇴임을 하셨고 피치 못하게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습관 때문인지 지금도 풀지 않은 짐들이 많이 있다
항상 이사를 하게 되면 부딪히는 문제가 있다. 가급적이면 짐을 줄여야 이사를 할 때 덜 번거롭기 때문에 필요 없는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버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놓고 옥신각신하게 된다. 그때 마다 어머니와 나는 치열하게 기 싸움을 벌이곤 하는데 대부분의 불필요한 (?) 짐들은 다 내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좋은 습관인지 나쁜 습관인지 모르겠다. 딱히 수집벽이 있거나 하는 건 아닌데 쉽게 물건을 버리지 못한다. 각종 영화잡지와 기념품, DVD, CD, 비디오 테이프, 책 같은 것들이야 그렇다 쳐도 낡고 오래 되서 못 입는 옷이나 잡다한 일상적인 용품들도 마찬가지다. 당장은 필요 없고 쓰지 않는 물건이라 해도 그동안 모아놓은 시간과 정성이 아까워서 혹은, 정이 들어서 차마 버릴 수가 없다.
이번에도 같은 문제에 봉착했다. 창고 가득 쌓여 있는 짐을 보고는 어머니가 "저거 다 버리고 가자" 고 하신다. 언제나 그럴 수 없다는 대답이 나올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이번에는 작정을 하신 듯 단호한 어조다. 나도 질 수가 없어서 한마디 했다. "혹시 내 물건 함부로 버리면 알아서 하세요....." 나름대로는 내 물건에 손 하나 대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 (?) 의 메시지인데 효과가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동안 말도 없이 버린 물건들이 하나 둘이 아니어서다. 아무리 말을 해도 소용이 없으니 내심은 포기하기도 했다.
그때 마다 답답하고 속에서는 열불이 터진다. 왜 마음대로 갖다 버렸냐고 화를 낼 수도 없다. 다른 사람한테는 쓸모없어 보일지 몰라도 나한테는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도 소용없고 "그럼, 어머니가 좋아하는 난 화분을 갖다 버리라고 하면 그럴 수 있느냐....." 고 감성적으로 호소를 해도 그 때 뿐이다. 끝까지 취향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신다. 그냥 눈에 거슬리는 것이다. 취향은 옳고 그름이 없다. 말 그대로 취향은 내가 영화를 좋아하고 어머니가 난을 좋아하는 것처럼 좋아하고 마음이 가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런데도 세상에서 가장 가깝다는 가족에게 조차 취향의 다름을 인정받기란 힘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