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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에 서울 시청 앞 잔디밭에서 보수 단체들의 집회가 있었다. 때가 때인지라 재향군인회와 한기총등 여러 보수 단체들과 한나라당의 전, 현직 지도부가 대거 참석해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논의 중단과 사학법 개정 반대를 외쳤다고 한다. 글쎄. 모르겠다. 대체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와 사학법이 무슨 상관이 있기에 그들을 거리로 내몰았는지 우민한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불가이지만 나라를 구하겠다고 모인 그들의 우국충정을 새삼 탓할 일은 아닐 것이다.
보수 단체들의 집회를 딱 한 번 정도 목격한 적이 있다. 작년 가을쯤에 우연히 시청 앞을 지나치다 유엔 창설 60주년 기념 국민대회를 보게 됐다. 예상했던 대로 들어두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집회는 아니었다. 나름대로 보수 쪽에서는 명망 있는 인사들이 나와 열변을 토했지만 김정일과 노무현 정권을 향해 원색적인 비난과 저주를 퍼부어대고 미국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을 다짐하면서 양손에 든 태극기와 성조기를 번갈아 흔들어 대는, 공포와 선동만이 난무하는 폭력적인 집회였다는 인상만 받아서인지 좀 섬뜩했다.
꼭 쇠파이프와 죽창을 들어야만 폭력적인 것은 아니다. 대상이 분명한 극단적인 저주와 증오도 폭력적이긴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투쟁은 즐겁게에 익숙해서인지 너무도 틀에 박히고 심각한 집회는 재미가 없었다. 어쩜 저리 여유들이 없을까. 그만큼 절박해서 일까. 잠깐 동안 지켜 본 집회는 대한민국이 빨갱이들의 천지가 되어서 당장 망하는 듯 보였다.
애초에 그들의 집회를 너그럽게 보기는 불가능한 일이고 그냥 정치적인 입장이 다르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30여 분 정도 집회현장을 돌아보다가 열이 확 받쳤다. 사람들의 발길과 쓰레기에 짓밟힌 잔디들을 보고 있자니 평소에는 잔디를 보호해야 한다면서 시민들의 출입을 원천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서울시가 왜 그렇게 보수단체들의 집회에는 너그러운지, 서울에서 태어나 30여 년을 살면서도 맘 놓고 잔디밭 안을 들어가 본 적이 거의 없는 데 어찌하여 저들은 자기 집 안방처럼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오늘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보수 단체들의 집회 사진을 보니 새삼 부아가 끓어오른다. 서울시의 무원칙과 편파성은 해가 바뀌고 시장이 바뀌어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일 년의 반 이상을 시민들의 발길을 차단 한 채 잦은 행사를 열고 그로 인해 망가진 잔디를 새로 심기 위해 수억의 예산을 써 온 것도 언짢은 일인데 특정 단체에만 집회를 허가 한다는 비판이 신경 쓰였는지 앞으로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어떤 집회와 시위도 허용하지 않겠다" 는 확고한 입장을 밝혔음에도 어째서 보수 단체에만은 그런 원칙이 여전히 예외로 적용되는 것인지 의아할 따름이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기본이 내 팽겨진 서울시청 앞 잔디밭은 서울시의 무원칙하고 편파적인 행정을 앞장세운 일부 보수 단체들만의 놀이터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나도 시청 앞 잔디밭에서 마음껏 뛰놀고 싶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