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를 좋아한다. 하루라도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으면 손이 바르르 떨릴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일부러 술자리를 마다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한 번 마시면 끝까지 가야 직성이 풀린다. 아침에 숙취 때문에 고생을 하면서도 호시탐탐 술 마실 기회를 엿본다. 상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근거리에 앉아 술 한잔을 걸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쌓였던 스트레스도 한결 가벼워지는 듯 하고 무엇보다 나와 다른 사람이 감정을 나누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처음 만나 탐색전을 벌이면서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까지의 서먹한 분위기도, 생각하는 것이 달라서 겉도는 것도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다. 누군가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더욱 술자리에 집착한다고 하지만 난 술이 사람들 사이를 친밀하게 만드는 보다 많은 기회를 준다고 믿는 편이다.
평소에 이것저것 잘 잃어버리는 편이다. 아침에 우산 하나 들고나가면 저녁엔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게 들어올 정도로 주의가 산만하고 덤벙대는 성격이라 주위의 헌신적인 보살핌 없이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다. 근데, 이상하게 술자리에서만은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잘 잃어버리기는커녕 오히려 남들이 놓고 가는 물건까지 챙긴다. 그게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평소에는 칠칠치 못한 인간이 술을 마시게 되면 똑똑해지는 성분이 술에 들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고주망태가 되면 잠깐 해본다.
보통 사이좋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다음 달 카드 전표가 쌓여가는 줄 모르고 차수를 넘어가다 보면 누구랄 것도 없이 정신을 놓게 마련이다. 보통 새벽 4~5시. 저녁부터 자리를 잡고 앉아 8~9시간 동안 술을 마시다 그제야 술 마시는 것도 지치고 공통의 '육포' 가 되어 잘근잘근 씹던 이야기 거리들도 바닥이 나서 자리를 파하게 (그래도 열에 다섯 번은 청진동이나 신사동에 가서 해장술을 먹게 된다) 되는데 퀭한 정신으로 겨우 몸만 챙겨 나가다 보면 테이블에는 피다 남은 담배며 라이터, 혹은 지갑이나 가방 같은 것들을 두고 가기가 일쑤다. 다들 정신이 없으니 누가 챙기고 말고 할 것도 없는데 이상하게도 그런 게 눈에 잘 띈다.
지갑이나 가방이야 즉시 돌려주면 되지만 담배나 라이터 같은 건 일단 가방에 넣고 보니 챙겼는지도 모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 전부 다 내 차지가 된다. 다음에 만날 때 까지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돌려주기도 뭐하고 중요한 건 주인이 누군지도 모른다는 거다. 그렇게 가지고 온 라이터가 수 백 개는 될 것이고 모르긴 몰라도 담배는 열 보루가 넘을 거다. 속으로는 "이것들이 배가 불러 터졌어. 올 해 안에 또 담뱃값이 오른다는데 담배 소중한지 알아야지", 하면서도 왠지 땡 잡은 거 같다. 수중에 담배 서너 갑이 들어오면 행여 내 의지에 반해 술값을 냈더라도 숙취에 쓰린 배만 부여잡고 말지 나도 모르는 카드 전표를 보고 속 쓰려 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단순한 성격이라니... :-)
어제도 그렇게 모은 담배가 다섯 갑이다. 레종, 더원 (두 갑) 더원 1.5, 보그. 레종과 더원은 뜯지도 않은 새 담배고 나머지도 열 가치씩은 들었으니 돈으로 따지면 10000원 정도 되고 보통 3~4일은 피울 수 있는 분량이다. 부수입치곤 짭짤하다. 몸에도 안 좋은 담배 공짜로 생겨봐야 좋을 게 뭐냐고 물어보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술자리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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