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구성상의 허점을 보이긴 했어도 최동훈 감독의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 은 꽤 재미있는 영화였다. 할리우드의 범죄물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이야기가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인물들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가면서 속고 속이는 구성은 흥미로웠으며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생생한 캐릭터들이 툭툭 던지는 대사는 찰지고 유머러스했고 배우들은 최선을 다해 활력을 불어 넣는다. 무엇보다 그런 부분들을 능숙하면서도 빠르게 조절해 내는 솜씨는 한국 영화에서 보기 힘든 것이었다. 유사 할리우드 전략을 택한 몇 편의 한국 영화들을 보면서 꽤 그럴 듯하네 라고 생각한 건 <범죄의 재구성> 이 처음이기도 했다. 몇몇 부분에서 아귀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허점조차 사소한 실수 내지는 용납할 수 있는 애교로 봐줄 수 있을 만큼 <범죄의 재구성> 이 보여주는 장르적인 쾌감은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두 번째 영화 <타짜> 는 <범죄의 재구성> 의 장점을 확실히 이어받는다.
<타짜> 에서 수시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구성은 꽤 긴 상영시간 (140분) 에도 거의 흐트러짐이 없을 정도로 탄탄한 긴장감을 준다. 그야말로 숨 쉴틈 없이 몰아간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인데 도박을 소재로 한 일련의 영화들이나 <범죄의 재구성> 처럼 관객과 수 싸움을 벌이면서 반전의 쾌감을 주기 보다는 타짜로 성공하게 되는 고니 (조승우) 의 복수극이라는 큰 틀 안에서 정마담 (김혜수), 평경장 (백윤식), 아귀 (김윤석), 고광렬 (유해진) 같은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캐릭터들, 성실하게 재현해 낸 도박판의 공기, 능글맞은 유머 같은 것들을 속도감 있게 보여준다. 종종 이야기는 어색한데도 일단 빠르게 몰아 부치는 탓에 영화를 보는 동안은 다른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는다. 허영만 화백의 만화를 읽지 않아서 그것이 좀 더 원작의 힘에 의지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찌됐건 <타짜> 는 <범죄의 재구성> 처럼 이야기와 캐릭터를 빠르게 이어 붙이는 쾌감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는 감독의 재능이 돋보이는 것만은 사실이다.
<타짜> 는 '섯다' 라는 도박을 소재로 하면서도 도박 자체의 묘사는 생각만큼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고니가 평경장을 만나고 타짜가 되기 위해 연습을 하는 과정은 최소화 되어 있고 이후 본격적으로 벌이는 판은 빈번하지만 세세하거나 길지 않다. 타짜들의 신묘한 기술 같은 것들도 굳이 강조해서 보여주지 않는다. 각자 다른 패를 쥔 순간의 긴박감 같은 도박 영화의 '서사적인 재미' 를 위한 화투판도 거의 없다. 그래서 섯다의 규칙을 몰라도 영화를 즐기는 데 거의 지장이 없다. 막판의 고니와 아귀, 정마담이 벌이는 한 판에서도 정작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떤 패를 쥐고 있는지 보다는 그들이 같은 공간 안에 모여 있다는 것이다. 진실은 감춰져 있고 믿을 만한 친구는 없다. 고니는 평경장을 죽이고 고광렬의 손을 작살낸 아귀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아귀는 무자비할 정도로 투철한 직업정신의 발로를 위해, 정마담은 고니에 대한 욕망과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본능 앞에 모든 것을 건다. 그러니까 '도박판에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 던 평경장의 말처럼, '도박은 목숨을 걸고 하는 것' 이라던 고광렬의 말처럼 속고 속이는 법칙에 익숙한 타짜들이 진짜 인생을 판 돈 삼아 일생일대의 도박을 하는 셈이다. 그들이 한자리에 모이기까지 영화는 타짜의 손놀림처럼 아주 빠르고 능수능란하다.
덧붙임
<타짜> 가 섯다를 모르고도 볼 수 있다는 것은 나로서는 다행이다. 한참 전에 홍콩 도박 영화가 유행했을 때 <지존무상> 이나 <정전자> 를 보면서 주위에서는 마지막의 반전에 연신 탄성을 지르고 있는데 혼자만 멀뚱한 기분이란, 뭔가 크게 소외된 것 같아서 서러웠다 (그렇다고 서럽기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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