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서극은 본업인 감독 보다 제작자의 역할에 충실했던 적이 있다. 홍콩 뉴웨이브의 일원으로 불릴 만큼 전도유망한 감독이었던 서극은 <촉산> 을 기점으로 슬럼프를 겪는다. 대단한 야심을 가지고 만든 <촉산> 은 홍콩 영화계를 뒤흔들어 놓을 만큼 실패했고 이후 내놓는 영화마다 미적지근한 반응을 얻는다. 물론, 바로 뒤에 만든 <상하이 블루스 - 上海之夜, 1984년> 는 아직도 서극의 필모그래피에서 최고의 영화로 꼽을 만한 완성도를 보여주지만 흥행에서는 실패하고 <타공황제 - 打共皇帝, 1985년> 와 <도마단 - 刀馬旦, 1986년> 은 신통찮은 평가를 받는다. 아무튼, 이후 서극은 잠시 연출을 쉬고 제작과 기획에만 전념한다. 전영공작실이라는 자신의 영화사와 신시각특기공작실이라는 특수효과 전문 팀을 꾸려나가야만 하는 경영자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을 것이다.
자의 반 타의반으로 영화사 일에 전념하던 서극은 제작자로서 본격적인 두각을 나타낸다. 제작자로서 서극의 뛰어난 점은 <촉산> 의 실패 이후 할리우드의 제작기술을 무조건 도입하기보다는 모방을 통해 기술과 아이디어를 접합하려는 시도를 보였다는 것이고 재능 있는 사람들을 적절히 기용하는 안목이었다. 신시각특기공작실을 통한 특수효과에 대한 노력은 <최가박당 - 여황밀령> 같은 대규모의 액션영화는 물론 <상하이 블루스> 나 <도마단> 같은 드라마에서도 멈추지 않았고, <생사결> 로 막 감독 데뷔를 한 정소동을 자신이 만드는 영화에 액션 연출을 맡긴다거나 오우삼에게 <영웅본색> 을 연출할 기회를 준 것은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다. 1989년에 <영웅본색3> 을 만들기까지, 비록 서극이 연출을 하지 않은 기간은 3년밖에 되질 않았지만 그 사이에 그가 제작하고 기획한 영화들은 홍콩 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꿀 만큼 새로운 시도들로 가득했고 흥행에서도 성공한다.
<철갑무적 마리아 - 鐵甲無敵瑪利亞, 1988> 도 그 시기에 만들어졌다. 제목이나 스틸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폴 버호벤의 <로보캅> 이 성공하자마자 제작에 착수했고 프리츠 랑의 고전 SF <메트로 폴리스> 를 차용했다. 그 뿐 아니다. 일본 괴수영화와 로봇 애니메이션, 홍콩의 무협영화. 심지어는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에 이르기까지 현재와 고전을 넘나든다. 지금 보면 영화의 시각효과가 촌스럽고 구식처럼 보이긴 해도 할리우드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겼던 로봇이 나오는 액션 영화를 실현한 것은,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신선한 시도로 받아 들일만 하다.
당시 홍콩 영화의 제작 여건을 생각하면 로봇의 움직임은 꽤나 자연스럽다. 특히 온갖 무기를 장착한 거대 로봇은 미니어처를 만들어놓고 합성을 한 것이 아니라 거의 실제 크기에 가깝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로봇의 위용은 더 구체적이고 입체감이 살아있다. 그 큰 로봇을 어떻게 움직이면서 촬영을 했는지는 몰라도 온몸의 관절을 부자연스럽게 꺾어대던 <로보캅> 의 움직임에 비해서도 훨씬 부드럽다. 얼핏 건담 시리즈의 지쿠를 연상케 하는 로봇의 외양과 장착한 무기들,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로봇의 팔 다리가 분리되거나 발밑에 추진 장치가 있어 불꽃을 일으키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장면들도 그럴 듯하게 구현된다. 할리우드 영화처럼 세련되진 않아도 투박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정소동의 액션 연출도 흥미롭다. <생사결> 과 <천녀유혼> 을 직접 감독하고 <영웅본색2> 와 <첩혈쌍웅>, <소오강호> 와 <동방불패> 로 이어지는 명불허전의 액션 연출은 <철갑무적> 에서도 여전하다. 초반의 위스키 (서극이 직접 연기한다) 의 집에서 벌어지는 액션, 숲 속에서 위스키를 쫓는 장면들은 왜 정소동의 액션 연출이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은지, 원화평의 우아하고 절도 있는 액션 연출과는 또 다른 그의 장점을 잘 보여준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인간의 멈출 줄 모르는 욕심이 파국을 부르고 만다는 이야기다. 중심적인 이야기도 아니고 곁가지로 흘리는 것에 불과하지만 인간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무자비한 두목이 강해지기 위해 스스로 로봇의 팔을 이식한다거나 인간 마리아가 로봇 마리아를 질투하면서 파괴하지 못해 안달한다는 설정은 심각하진 않아도 재미있다.
결국은 순수한 액션영화인 <철갑무적 마리아> 가 아무리 <로보캅> 과 <메트로 폴리스> 를 차용했다고 해도 그 영화들의 염세적인 세계관까지 가져오기에는 여러 가지로 어울리지 않았을 터이니 영화의 재미를 위한 딱 그 정도의 수준은 적절해 보인다.
덧붙임
어수룩한 기자를 연기하는 양조위는 영화의 거의 마지막까지 이야기와는 상관없이 나와서 부딪히고 넘어지고 구르다가 화장실에 빠지는 수난을 당한다. 영웅당의 사부로 나오는 임정영은 강시 영화에서 영환도사로 나오던 배우다. 황지강 (천라지망, 빅히트의 감독) 이 단역으로 출연한다. 감독인 종지문은 허안화의 <풍겁> 과 <망향>, 장완정의 <가을날의 동화> 같은 영화들을 촬영했던 유명한 촬영감독이다. 서극과는 <제일유형위험> 의 촬영감독으로 인연을 맺었고 <예스마담> 시리즈로 감독으로 데뷔한 이후 서극이 제작한 서너 편의 영화에서 연출과 촬영을 하기도 한다. 국내는 <철갑무적> 이라는 제목으로 명동 코리아 극장에서 개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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