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되돌릴 수 만 있다면.....' 이란 무의미한 가정은 때때로 삶의 도피처가 되기도 한다. 빈도의 차이가 있긴 해도 무언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일이 잘못되었다고 느끼거나, 모른 척 외면해 버리고 싶을 때, 시간을 되돌려 아무 일도 없었던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하는 심정은 가능하지 않은 환상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 절박하게 다가온다. 그런 고민을 다룬 영화나 소설이 끊임없이 나오고 반복되는 것도 그만큼 많은 것을 놓치고 잃어버리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 時をかける少女> 도 그런 내용의 영화다. 주인공인 마코토는 흔히 성장영화나 명랑만화에서 볼 수 있는 아이다. 늘 실수투성이에 덤벙대기만 하고 자기 몫으로 남겨진 푸딩을 동생이 먹은 것에 꽁해 있을 정도로 단순하지만 명랑하고 쾌활한 성격이다. 공부도, 요리도, 운도 뭐든지 어중간하고 장래 희망 같은 것도 분명치 않다. 그냥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다. 그런 마코토가 우연히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고 타임 리프는 일상의 큰 활력이 된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롤라 런> 의 주인공이 그랬듯이, 마코토도 시간을 거스르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린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시간을 거스르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대체 무슨 조화인가 싶어서 잠깐 고민하다 직접 그 능력을 경험하는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전후좌우를 깊게 따져 들거나 그로 인해 어떤 파장이 일어난다고 해도 실감하기 어려운 나이라면. 영화 속의 마코토처럼 단순하게 생각하거나, 아무 일도 없었던 시간으로 되돌아가면 그만이다. 반신반의하던 마코토가 시간을 되돌리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동생 먼저 푸딩을 먹고 사소한 실수를 모면하고 노래방에서 오랫동안 노래 부르기라는 건 정말 그 또래의 아이다워 보인다.
무릇 큰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교훈이 도시의 빌딩 사이를 날아다니는 거미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장난처럼 시작했던 마코토의 시간여행은 점점 실감할 수 있는 현실이 된다. 그저 바닥을 굴러다니면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걸, 마코토는 몸으로 체득한다. 어색하고 서투른 감정도 한차례 지나간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고 어른도 아이도 아닌 어중간한 시절, 복잡한 세상의 질서와 한 발짝 떨어져 있던 마코토에게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언젠가는 원하지 않아도 많은 것들을 감당해내야만 하는 현실은, 잔인하지만 오롯이 마주 대하는 의지를 깨우쳐가는 과정이다.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을' 만큼 냉혹하다 해도 견뎌내야 한다. 그건 순응이 아니라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어느 푹푹 찌는 여름날 마코토가 겪은 시간여행은, 진기한 체험이기도 하겠지만 세월의 더께로 남을 추억과 세상을 대하는 겹겹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세상과 함께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