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은 같은 제목으로 출간된 조세희의 연작을 영화로 만들었다. 원작의 배경이었던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가상의 동네를 바닷가의 염전으로 바꾸고 작은 설정들이 달라진 것을 제외하고 기본적인 이야기는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영화가 제작되었던 때가 막 새로운 군부가 정권을 잡은 시기이고 검열로 인해 원작이 가지고 있던 명료함을 덜어낼 수밖에 없었던 대신에 서정적인 감수성은 한층 더해졌다. 12편의 연작이 개별적으로 이어지던 원작의 느낌과는 달리, 한 가지 에피소드만을 영화로 만들었다는 한계도 있다. 한 가지 첨언하자면, 촬영이 막바지에 이를 때 까지 심의를 받지 못해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야 했다고 한다.
영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은 누군가를 끊임없이 바닥으로 내모는 시스템의 부조리함을 소리 높여 까발리지는 않아도 그런 악순환을 끊임없이 환기시키고 한 편으로는 모든 것들을 담담하게 지켜보게 한다. 아무래도 만들어진지 20여 년이 지났기 때문인지, 가끔 직설적인 배우들의 연기나 대사에서 과장을 지워내기에는 어려워 보이고 영희 (금보라) 가 매매 계약서를 되찾기 위해 부동산 업자를 따라가는 후반부는 소설과는 다른 영화의 특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아서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의도적으로 한발 물러난 카메라는 섣불리 감정을 조작하지는 않는다. 그 시절 한국영화에서 빈번하게 쓰였던 클로즈업이 거의 없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어린 영수와 명희를 멀리서 지켜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첫 장면 이후로 영화는 계속 그런 시선을 유지하려 한다. 비록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기도 힘들만큼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남들처럼 잘 살아 보고 싶다는 희망을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가족들 앞에 현실은 그런 작은 소망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난장이의 자식이라는 편견과 궁핍함을 벗어나려고 해도 결국은 제자리에 서 있기도 힘든 현실, 당장 살 길이 막막한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을 쓸쓸하게 고백하는 아버지의 모습, 영희가 되찾고자 했던 희망이 망가진 채로 남겨진 가족들에게 이어지는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피할 수 없는 현실의 고난은 닥쳐오고 그걸 받아들여야 하는 가족들의 고통과 상처는 깊어만 가는데도 영화는 이상하리만치 서정적이어서 되려 씁쓸하고 아프다.
가난한 난장이의 아들로 살아온 자신의 인생이 대물림 될까봐 두려워하던 영수 (안성기) 는 공포와 연민의 근원이었던 첫사랑 명희와 아버지를 떠나보낸다. 자신과 가족에게 닥친 슬픔에 쉽사리 절망을 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는다. '늘 사는 게 전쟁이었고 날마다 전쟁에서 지기만 했던' 영수는, 그러나 아직은 세상의 불평등과 폭력에 극단적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전사가 아니다.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을 꼭 죽이고 만다' 는 마지막 독백은 그래서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덧붙임
1. DVD로 출시하면서 화질을 수정, 복원한 것인지 원래 필름 보관 상태가 좋아서인지 의외로 영화의 화질은 멀쩡한 편이다. 2. DVD를 소개하는 자료에 의하면 81년 대종상 전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가 시상 3시간 전에 전부 취소되었다고 한다. 영화의 배경지인 염전마을은 지금의 시화공단이고 이원세 감독과 박승배 촬영감독이 함께 만든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와 같은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