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동안 잘 쓰고 있던 집 컴퓨터 스피커가 고장 났다. 컴퓨터로 음악을 듣는 것도 아니고 영화를 자주 보는 것도 아니라 좋은 스피커가 필요는 없는데 그래도 두고두고 쓰면 좋지 않겠냐는 생각에 큰 맘 먹고 비싸고 좋아 보이는 스피커를 구입했다. 간단하게 스피커를 설치하고 <다이하드> 의 DVD를 틀어봤다. 새로 산 스피커의 테스트용으로 <다이하드> 는 적절치 않은 선택이지만 당장 손에 잡히는 게 <다이하드> 밖에 없다. DVD롬에 디스크를 넣고 조금 돌려보는데 역시 전에 쓰던 스피커와는 다른 소리를 내준다. 워낙 그 쪽에는 문외한이라 뭐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귀가 호강 하는듯한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다이하드> 가 20년이 다 된 영화라 투박하고 거친 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데도 썩 만족스러운 소리를 들려준다.
생각해보니 내게 소리의 위력을 느끼게 해준 영화는 <다이하드> 다. 영화의 주인공인 존 맥클레인이 총을 쏘는 순간 스크린의 앞과 양 옆에서 들리던 수많은 소리, 빌딩에 헬리콥터가 부딪히면서 거대한 폭발음을 내는 소리에 얼이 빠져서 오히려 영화 보다는 소리에 압도당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세상에 이런 요지경이 다 있다니, 신천지를 발견한 콜럼버스의 심정이 그랬을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의 흥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건 마치 <아라비아의 로렌스> 를 (멀티플렉스로 바뀌기 전) 대한극장의 와이드 스크린으로 보는 즐거움과 맞먹었다.
언젠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잠깐 동안 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적이 있다. 한 일분이 될까 말까한 시간이었지만 그 짧은 정적이 길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스크린에서는 계속 배우가 말을 걸어오는데 꼭 내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사람인 거 같았다.
영화는 때로, 배우의 목소리나 스쳐지나가는 주변 소음, 혹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소리와 음악을 통해 어떤 감정과 닿게 한다. 마틴 스콜세지의 <특근 - After Hours> 에서 폴 (그리핀 던) 이 사무실에 앉아 있는 장면부터 마시 (로잔나 아퀘트) 와 만나 대화하는 장면에 흐르던 G선상의 아리아는 좋은 의미에서 참 기묘했다. 아직도 영화를 보고 이런 감정을 가질 수 있나 싶은 그런 느낌. 정말 좋은데 왜 좋은지는 모르겠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방 안을 가득 메우던 긴 정적과 바깥에서 들리는 소음, 그 사이로 가늘게 떨리는 장만옥의 숨소리가 뒤섞인 <아비정전> 의 거친 동시녹음도 잊을 수가 없다. 영화는 빛의 마법이기도 하지만 소리의 예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