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의 영광을 손쉽게 이어가려는 안일함은 대부분의 속편이나 리메이크 영화들이 피해가기 어려운 유혹이자 함정일 것이다. 속된말로 속편과 리메이크는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두고두고 놀림감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속편과 리메이크작들이 쏟아지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검증된 이야기를 가져다 무언가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익숙함 안에서 새로움을 끌어내는 것이 됐건 돈 벌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건 말이다. <파리의 늑대인간 - An American Werewolf In Paris, 1997> 은 존 랜디스의 <런던의 늑대인간 - An American Werewolf in London, 1981> 의 속편 격이자 리메이크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만큼 기본이야기를 비롯한 많은 부분이 <런던의 늑대인간> 으로부터 재활용되고 있다.
<파리의 늑대인간> 은 꽤 재미있는 영화다. 전편보다 나은 속편 (혹은 리메이크작) 은 없다, 라는 속설을 뒤집을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런던의 늑대인간> 에서 보여줬던 공포와 코미디의 결합은 <파리의 늑대인간> 에서도 나쁘지 않다. 보름달이 뜨면 늑대인간으로 변하는 주인공이 닥치는 대로 사람을 뜯어 죽이는 살육과 죽은 사람들이 주위를 떠돌면서 '다 썩어가는 시체와 포르노를 봐야하다니 내 신세가 한심하군,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살하는 편이 낫지 않니' 식으로 던지는 뼈 있는 농담은 <파리의 늑대인간> 에서도 톡톡 튀어 나온다. 늑대인간에 물려 죽은 이후 끔찍한 몰골로 변해버린 친구와 무고하게 희생된 여자가 앤디 (톰 에버렛 스콧) 의 주위를 떠돌면서 신세한탄을 늘어놓고 이죽거리는 것은 재탕에 불과하지만, 워낙에 그 상황과 농담 자체가 괴이해서 웃지 않을 수가 없다. 대규모의 살육이 벌어지는 포르노 극장을 성당으로 바꾸어놓으면서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의 형상을 등장시키고 약간의 슬랩스틱이 뒤섞인 새로운 농담도 낄낄거리며 웃게 할 정도는 된다. CG로 탄생된 늑대인간은 특수분장으로 만들어 낸 늑대인간 보다 눈으로 보는 즐거움과 충격은 적지만 재빠르게 카메라를 향해 돌진하는 장면에서는 CG이기에 가능한 쾌감도 맛 볼 수 있다.
<파리의 늑대인간> 은 한 가지 이야기가 더 첨가된다. 주인공 앤디와 사라핀 (줄리 델피) 이 보름달이 뜨면 난폭한 짐승이 되어버리는 자신의 뒤바뀐 존재를 부정하고 벗어나려는 것에 비해 늑대인간의 리더격인 클로드 (피에르 코소) 는 운명에 적응하고 개척하려고 한다. 문제는 그것을 나쁜 방향으로만 끌고 간다는 것이다. 마치 스킨헤드족처럼 머리를 박박 민 클로드와 그의 패거리들은 정부의 사회안전망이 쓸모없는 사람들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쪽으로 낭비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세상을 깨끗하게 청소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거기에는 병자와 가난한 사람, 천박하고 철없는 미국인들도 포함된다. 클로드가 틈만 나면 '난 미국인을 사랑해' 라고 외친다거나 성당에서 벌어지는 살육이 노는 것에만 열중하는 미국인들을 위한 축제였다는 것은 가볍게 비꼬는 농담이기도 하다. <런던의 늑대인간> 에는 없던 이런 설정은 선과 악의 대립을 선명하게 하고 자신을 문 늑대인간의 심장을 먹게 되면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새로운 이야기로 확장되면서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향한다.
결과적으로 좀 더 밝은 결말은 나쁘지 않다. <파리의 늑대인간> 은 덜 웃기고 더 가벼워진 <런던의 늑대인간> 같고 한 편으론 늑대인간의 청춘 로맨스물처럼 보인다. 인간으로 돌아온 앤디와 사라핀이 떨어진 결혼반지를 줍기 위해 자유의 여신상에서 뛰어내리는 마지막은 처음과 연결되면서 다르게 변형되는데 약간의 뒤틀림이 주는 경쾌하고 발랄한 에너지는 해피엔딩을 기분 좋게 수긍할 수밖에 없게 한다. <파리의 늑대인간> 은 딱 그만큼이 즐거운 영화다. 이 정도의 속편과 리메이크라면 적어도 놀림감이 될 일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