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시리즈 <심슨 가족> 을 극장판으로 만든다는 소식을 처음 들은 이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국내 광고 문구를 잠시 빌리자면, '싹수 노란' 다섯 명의 심슨가족과 스프링필드 마을 사람들을 커다란 스크린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건 완성도를 떠나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증거이자 커다란 축복이다. 이미 수많은 TV 시리즈들이 고유의 매력을 브라운관에서 스크린으로 옮겨내기가 만만치 않음을 증명해준바 있고 <심슨가족 더 무비 - The Simpsons Movie, 2007> 도 그런 혐의에서 완전히 비껴가기는 힘들어 보인다. 3년간에 걸쳐 11명의 작가들이 백 번 넘게 손을 봤다는 각본에는 톡 쏘는 농담이 조금 무디게 자리 잡고 있다. <심슨가족 더 무비> 는 긴 기다림에 얼마간은 부응하면서도 약간은 심심한 스페셜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치와 스크래치의 극장판을 보던 호머 심슨이 공짜로 TV에서 볼 수 있는 걸 돈 내고 극장에서 보는 바보들이 있냐고 호통을 치는 영화의 시작은 자기고백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심슨가족만의 특징적인 캐릭터와 농담은 <심슨가족 더 무비> 를 재미있게 하는 요소다. 세상 사람들의 단점이란 단점을 죄다 모아놓은 호머와 그 가족들, 스프링필드 마을 주민들이 만들어 내는 기상천외한 소동과 행동은 지난 17년 동안 TV에서 수도 없이 반복되어 왔지만, 단 한 번도 지겨운 적이 없었던 것은 적당히 나쁘고 적당히 선한 캐릭터들의 매력 덕분이다. 무능력하고 우유부단한데다 열 받으면 아들의 목을 조르고 자신의 잘못을 남에게 떠넘기는 나쁜 호머와 의도하지 않게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무언가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는 착한 호머는 그런 심슨가족의 대표적인 캐릭터다. 심슨가족에서 거의 유일하게 제정신을 갖고 있으면서 감성적이고 깐깐한 원칙주의자이기도 한 리사도 늘 바른 생각과 옳은 일만 하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매사에 말썽만 피우고 호머 알기를 우습게 여기기도 하는 바트는 진심어린 가족의 사랑을 느끼고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품에 안기는 순진한 꼬마이기도 하다. 매번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고 자책하는 이 말썽장이들의 딜레마는 심슨가족을 이루는 근간이다. 따지고 보면 심슨가족의 거의 모든 캐릭터들이 그렇다.
<심슨가족 더 무비> 에서 호머는 바트에게 나체로 햄버거를 사오라고 시키고 바트가 경찰에 체포당하자 책임을 회피한다. 늘 다정다감하고 한결 같은 플랜더스가 부러워진 바트의 불만에 "이 세상에 자식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니" 라고 말하면서도 돼지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한다. 거기다 고작 공짜 도넛에 눈이 멀어 돼지의 오물통을 호수에 무단 투기한다. 심슨네 가족들과 스프링필드를 고난에 몰아넣는 재앙의 시작이다. TV판 극장판 가릴 것 없이 심슨가족에는 좀 더 막나가고 싶은 욕망과 보편적인 믿음이 공존한다. 대개 그 시작은 실수투성이에 무책임한 호머로부터 벌어지고 주위에 전염된다. 그들이 툭툭 던지는 과격한 농담은 황당하고 어이없으면서도 아닌 건 아니다, 라고 선을 긋는 타당한 정치적인 입장을 담아낸다. 심슨 가족이 정말 재미있고 웃긴 것은 모순적인 상황을 극단적으로 과장하고 대중문화와 사회 전반에 걸치고 있는 농담을 매우 적절하게 쓰고 있다는 것이다. 스프링필드의 호수를 오염시키고 알라스카로 도망쳐 온 호머가 환경파괴에 앞장서는 석유회사로부터 천 달러의 돈을 받는다는 농담은 섬뜩하면서도 재치가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무수한 농담과 패러디는 따로 거론하기가 힘들 정도로 많고 많다. 그린데이의 멤버들이 몸소 목소리를 연기하는 그린데이의 호반 콘서트는 <타이타닉> 의 침몰하는 배로 바뀌고 호머가 남은 10달러로 운명을 거는 놀이공원은 영락없는 <빅 피쉬> 다. 거대한 돔에 갇히고 알라스카로 도피하는 여정은 스필버그의 <우주전쟁> 에, 도착하자마자 호머와 마지가 벌이는 낮 간지러운 애정행각은 그에 걸 맞는 월트디즈니의 고전 애니메이션 풍이다. 아무 생각이 없기로 따지면 호머를 능가하는 무능력한 정부와 교활한 권력자들, 호머 심슨이 "나를 못 믿겠으면 미국을 믿으라" 고 역설하는 뒤로 보이는 다양한 언어의 간판 (일본어로 고지라 모터스, 한국어로 텍사스 사투리 영어회화 강습이라고 쓰인) 은 더 많은 농담으로 확장될 수 있기도 하다. 이미 TV를 통해 군인들의 감시 하에 손에 수갑이 채워지고 채찍질을 당하면서 채색하고 있는 한국 애니메이터들을 등장시킨 심슨가족이니 한국에 관련된 농담이 새삼스러울 건 없다.
<심슨가족 더 무비> 는 오랜 시간 다져온 친근함을 적절히 활용한다. 심슨네 가족이야 말 할 것도 없고 스프링필드 마을 사람들은 잠깐씩의 출연 분량에도 TV속 그 모습을 재현해 낸다. 언제나 그렇듯 호머는 자신의 실수가 어떤 파장을 불러오는지에 대한 생각이 없다. 늘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족과 스프링필드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놓고도 모른 척 하기에 바쁘던 호머가 마지와 가족에 대한 사랑 (혹은, 버려지고 나서야 알게 되는 두려움 같은 것들) 으로 각성을 하게 되는 것은 TV 시리즈에서 익히 보아오던 방식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에 모범적인 중산층의 가장 플랜더스는 TV에서 은근히 조롱을 당하는 그 모습 그대로, 잔혹하고 냉정한 악당인 스프링필드 원자력 발전소의 번즈 사장과 술집 주인 모는 단 두 컷만 나오지만 적은 분량에서도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뻔히 눈에 보이는 범죄를 모른 척 하고 딴 짓 하기에 바쁜 경찰, TV속에 비쳐지는 모습과는 다른 광대 크리스티와 리사를 짝사랑하는 밀 하우스, 거칠면서 여린 아이 넬슨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영화 전체에서 바트의 존재감이 생각보다 덜한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호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보니 바트의 망나니짓이 덜해서 이기도 할 테지만, 그래도 바트는 바트다. 옆집에 사는 플랜더스 가족을 못마땅해 하고 놀려먹던 바트가 호머와 틈이 벌어지게 되면서 플랜더스를 이상적인 가정의 아버지로 생각하게 되는데 폭탄을 만지게 해준다는 호머의 말 한 마디에 아빠는 확실히 날 아는군요, 하면서 넘어가는 장면은 짧고 간결하게 바트의 성격으로 웃겨준다.
덧붙임
1. 도넛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깨는 호머가 도넛을 먹는 모습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더불어 D'Oh! 도 거의 안 나오는 거 같다. 이건 내 기억력의 문제 탓일까. 따라서 인용한 대사는 정확하지 않을수도 있음. 대충 뜻은 비슷할 거 같다. 2. 그래서 아무래도 다시 한 번 봐야겠다. 개봉일 부터 찬반신세인 심슨가족 안타깝다. 3. 호머는 몇 가닥 안 남은 머리칼을 바트에게 몽땅 뽑히는 수난을 당한다. 4. 톰 행크스도 출연한다. 5. 영화가 끝났다고 서둘러서 일어나지 말고 엔딩 크레딧을 꼭 챙겨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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