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더스 - Heathers> 는 90년대 청춘영화의 상징이었던 크리스찬 슬레이터와 위노나 라이더의 풋풋하고 싱그러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다. 벌써 만들어진지 18년이 다 된 영화고 아직 <볼륨을 높여라> 와 <가위손> 을 찍기 전이니 그들의 파릇파릇한 화사함은 오죽 빛이 나겠는가. 두 배우의 팬이라면 얼굴만으로도 감격할 따름이다. 그러나, <헤더스> 는 두 사람의 얼굴만큼이나 청춘의 아름다운 한 때를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그럼에도 살아라, 라고 등을 두드리고 손을 잡아주는 <키즈 리턴> 같은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헤더스> 는 웨스트버거라는 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온갖 사회의 폭력과 부조리함에 조롱과 냉소를 가득 품어 쏘아붙이는 영화다. 그 중심에는 잘 나가는 일진들의 결사체인 '헤더' 가 있다.
본격적인 사건은 제이슨 딘 (크리스찬 슬레이터) 이 전학을 오고 나서 시작된다. 제이디는 전학을 오자마자 아이들에게 공포탄을 쏘면서 "극단적인 건 감동을 주지 않니" 라고 하는 괴짜에 사람을 죽이고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거기에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지역 전체로 확대되자 더욱 크게 벌일 계획을 세우고 "이것이야 말로 80년대의 우드스탁이야" 라고 흥분한다. 헤더라는 모임에 들기 위해 온갖 하찮은 일과 수모도 마다하지 않던 베로니카 (위노나 라이더) 는 제이디와 단번에 눈이 맞고 두 사람의 사소한 장난은 연쇄살인으로 이어진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자 모든 악의 출발이다, 라고 생각하는 제이디는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쓰레기들을 제거하는 청소부를 자처하고 나선다.
제이디가 극단적으로 막 나가는 성격을 가지게 된 데에는 절대적으로 부모의 공 (?!) 이 커 보인다. 영화 속에서 두 번 정도 등장하는 제이디의 아버지는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건축업을 하는 사람인데, 도통 아들의 일에는 무관심하고 돈을 버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있다. 심지어는 재건축에 방해되는 세입자를 쫓아내기 위해 빌딩 전체를 폭파하는 부도덕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제이디는 세상의 모든 악을 날려버리기 위한 영감을 아버지에게서 얻는다. 제이디의 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언급이 되기도 하는데, 도서관이 폭발하면서 죽음을 당한 제이디의 엄마도 사실은 아버지의 탐욕에 희생당한 피해자이고 보면, 제이디의 표현대로 아버지도 청소되어야 할 사회의 악이자 쓰레기인 셈이다.
늘 차를 마시면서 무의미한 대화를 나누는 베로니카의 부모들도 어딘지 정신이 나가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베로니카는 그런 부모에게 멍청하니깐 그렇죠, 라고 일갈하고 부모는 너도 마찬가지야 라고 응수한다. 이런 기괴한 유머야 말로 <헤더스> 의 가장 큰 매력중의 하나다. 친구들의 잇단 죽음으로 자책하던 베로니카가 라이터로 자해를 하자 제이디가 베로니카의 화상자국으로 담뱃불을 붙인다거나, 모든 학생을 죽이려던 계획을 실패한 제이디가 "이 세상의 모든 학교가 사라지고 죽을 수밖에 없다면 뭘 하고 싶니" 라고 물어보면서 자폭하는 장면은 웃기면서 씁쓸하고 슬프기도 하다.
영화는 여전히 폭력적이고 강고한 사회에 대한 거침없는 조롱과 냉소, 작은 희망 따위로 뒤범벅된다. 헤더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 하는 베로니카는 일기장을 'dear diary' 라고 부르고 자신과 동격화 하면서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지, 라고 억눌리고 뒤틀린 자아를 표출한다. 권력 (헤더) 과 저항 (제이디) 사이에 어중간하게 끼어 있는 베로니카는 자신의 위치에 걸맞게 적당히 폭력에 동참하고 또 적당히 양심에 가책을 받는다. 그런 점에서 헤더와 제이디가 죽어도 끝까지 살아남는 베로니카는 사회를 이루는 하나의 상징처럼 보인다. 표면적으로 베로니카를 둘러싼 불완전함과 결별하는 <헤더스> 의 결말은 성장에 관한 잔혹한 악몽이자 학교는 썩어빠진 사회의 축소판이고 일곱 개 주의 일곱 개 학교를 떠돌아다녀 봐도 다른 것이라고는 사물함 번호밖에는 없다, 는 제이디의 외침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다.
이 기괴한 코미디를 연출한 마이클 레만은 <헤더스> 의 성공으로 할리우드로 진입하게 되고 첫 번째로 브루스 윌리스가 명화전문 털이범으로 나오는 괴상한 범죄 뮤지컬 영화 <허드슨 호크 - Hudson Hawk> 를 만든다. 마이클 레만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서로 어떻게 불협화음을 이루고 망가지는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영화이기도 하다.
덧붙임
왜 두 명의 남자가 생수병을 가지고 있으면 동성애자라고 확신을 하는 건지 처음 영화를 봤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