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아이덴티티> 와 <본 슈프리머시> 에서 영화의 완결을 알리는 낙관과도 같았던 엔딩 크레딧은 단순하지만 멋진 아이디어였다. 영화의 주제가인 Moby의 Extreme Ways가 흘러나오고 마치 전기 신호처럼 복잡하게 얽혔다가 풀어지기를 반복하면서 다시 크레딧으로 이어지던 그 길고 가느다란 선들은 <본 얼티메이텀 - The Bourne Ultimatum> 에 와서 제이슨 본이 지나쳐 왔던 수많은 시간과 그의 얼굴까지 만들어낸다.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을 맞추기 위해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미국을 숨 가쁘게 오가는 본 시리즈의 완결편 <본 얼티메이텀> 에서 제이슨 본 (맷 데이먼) 은 자신을 괴롭히던 사라진 기억의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그 험난했던 여정의 끝은 언제나 그렇듯 불편한 진실과 맞닥트리는 것이다.
<본 얼티메이텀> 은 모스크바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속죄하려 했던 본이 뉴욕으로 건너와 파멜라 랜디 (조앤 앨런) 와 통화를 하면서 끝나던 <본 슈프리머시> 의 엔딩 이전, 그러니까 아직 모스크바를 떠나지 못한 시간과 이후의 긴 여정, <본 슈프리머시> 의 엔딩을 거쳐 다시 숨겨져 있던 진실의 중심으로 성큼성큼 다가간다. 모로코로 가는 커피숍에서 "왜 나를 돕느냐" 는 본의 물음에 "당신과 일할 때 나도 힘들었어....." 라는 니키 (줄리아 스타일스) 의 고백 (사실, 이 대사 전후의 미묘한 분위기를 어떻게 봐야할지 조금은 애매하지만 본이 느꼈을 회의와 고민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을 통해서도 전해지듯이, 시리즈를 감싸 안던 제이슨 본의 불안과 죄책감은 자신을 만들어 낸 조직의 한 복판, 스스로 제이슨 본이 되기로 결심한 방안에서 "난 더 이상 제이슨 본이 아니야" 라고 선언하면서 끝이 난다.
이 결연한 최후통첩은 진짜 부정해야 할 실체조차 알 수 없었던 본에게 지워졌던 과거를 복기하고 결별해야 하는 것들과 마주 대하면서 비로소 진정한 자기 부정으로 이어진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때 출발의 근원에서 되돌아보고 바로 잡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물에 빠지면서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던 본은 다시 물에 빠지면서 자신을 짓누르던 악몽의 구렁텅이에서 헤어 나온다. 물론, 이 결말은 본 시리즈를 마무리 짓는 방법으로 썩 나쁘진 않지만 조금 안일하기도 하다.
다소 말랑말랑했던 <본 아이덴티티> 보다 한층 어둡고 불안한 제이슨 본을 창조해 낸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본 슈프리머시> 의 흔적을 적극적으로 끌어온다. 자기 복제는 대놓고 노골적이지만 영화는 그만큼이나 망설임이 없다. 그의 상징이 되어버린 들고 찍기는 본의 조각난 기억처럼 잘고 빠르게 이어붙이면서 능수능란하게 긴장을 조절해 나간다. 본은 주먹과 발을 휘두르고 감독은 카메라를 휘두르면서 그 싸움의 현장을 생생하게 잡아낸다. 맷 데이먼은 시리즈가 계속 될수록 본능적인 힘을 발휘하면서 끊임없이 몰려드는 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지만, 동시에 눈에 띄게 예민하고 초췌해져 가고 그만큼 액션과 이야기는 설득력을 얻는다. 예의 본 시리즈만의 그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자동차 추격전도 영화가 주는 활동사진의 쾌감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일깨워준다. 조금 과장하자면 <본 얼티메이텀> 은 120분의 상영시간이 클라이맥스고 그 가파른 질주는 Moby의 Extreme Ways 가 흘러나오는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나서도 멈추질 않는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과 주제곡이 나오면서 가슴이 뻥 뚫리는 통쾌함을 느끼는 것도 참 오랜만이지 않은가.
덧붙임
그럼에도 여전히 <본 슈프리머시> 가 본 시리즈 중에 가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