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08 13:15

영웅호한 - 英雄好漢, 1987 f i l m



 

   <강호정> 의 속편 격으로 알려진 <영웅호한 - 英雄好漢, 1987> 은 <대부> 로 시작해 <스카페이스> 로 끝을 낸다. 홍콩 범죄조직의 우두머리를 연기하는 주윤발은 대놓고 말론 브란도의 표정과 말투를 흉내 내고 아제 (주윤발) 를 배신하고 다른 조직의 우두머리가 된 아용 (만자량) 은 <스카페이스> 의 토니 몬타나 (알 파치노) 만큼이나 자신 안에 있던 성공에 대한 야망과 콤플렉스를 제어하지 못하고 파멸의 길로 들어선다. 그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모든 것에서 뛰어난 동생 (유덕화) 에 대한 열등감과 반발이다. 아제의 저택에서 벌어지는 마지막의 총격전은 좋게 말하면 대화가 부족한 가족 간의 오해와 불신이 어디까지 어긋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슬픈 현실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노골적인 <스카페이스> 의 베끼기다.


   <등대여명> 과 <열혈남아> 같은 영화를 통해 야비하고 소심한 악당으로 명성을 얻은 만자량은 이 영화에서 그의 커리어 사상 최고로 지독한 악당을 연기한다. 겉으로는 세상에 무섭고 두려운 것이 없는 천하의 악당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밑바닥을 드러내는 이중성이야말로 만자량이 연기하는 악당의 특징이기도 할 텐데, 자신을 죽이러 온 킬러 앞에서 오줌이라도 지릴 듯이 벌벌 떨다가 죽음을 확인하자마자 연신 손으로 'fuck you' 를 날리는 찌질한 모습은 그가 아니었다면 상상하기 힘들다.


   <영웅호한> 은 홍콩영화와 이 장르에 대단한 애정이 없다면 그저 그런 영화에 불과하다. <영웅호한> 은 음모, 배신, 복수, 의리, 액션 같은 홍콩 누아르의 모든 것이 있지만, 동시에 일반적인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이 없다. <영웅호한> 은 전편 격인 <강호정> 의 이야기와 직결되는 영화이지만 굳이 <강호정> 을 보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영화의 시작에 친절하게 전 편의 스토리를 설명해주고 있을 뿐 더러, 주윤발은 인덕 많고 사려 깊은 범죄조직의 대부이고 호시탐탐 그를 제거하려 드는 만자량은 보는 것만으로도 이가 갈릴 만큼 야비하고 치사한 악당이다. 내내 대립하는 그 둘의 관계만 알면 그만이다. 거의 모든 캐릭터는 마지막의 액션을 위해 소모되기만 하고 끝내 아용을 몰락하게 만드는 동생에 대한 콤플렉스는 있으나 마나하다. 모든 것이 과장 덩어리인 신파와 액션은 동시대에 만들어진 다른 홍콩 누아르와 비교해도 농도와 질은 한참 떨어진다.


   그래도 <영웅호한> 에는 홍콩영화만의 매력이 있다. 자신의 시대가 갔음을 알고는 쓸쓸하게 코트 자락을 여미는 영웅들은 세상에서 밀려나고 모든 것을 잃는다. 뻔히 끝이 보이는 싸움을 목전에 두고 치사한 변명과 후회 따위도 하지 않는다. 의리를 지키는데 말은 필요 없다. 그들을 화해할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넣는 신파는 아버지와 아들, 형과 동생이 서로에게 총을 겨눠야 하는 상황까지 만들어 낸다. 자신만의 원칙을 고수하고 타협하지 않는 패배자들의 피 튀기는 싸움은 <영웅호한> 이 홍콩 누아르의 아류임을 여실히 증명해 낸다.


덧글

  • viperwine 2007/10/09 17:59 # 답글

    오래돼서 잘 생각은 나지 않지만 기억을 가만히 더듬어보면, 이 강호정이란 작품은 만자량의 영화였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말씀하신대로 토니 몬타나-만자량의 흥망성쇠를 다루는 2부작의 작품이죠. 열혈남아에서도 놀라웠지만 이 만자량이라는 배우는 상당히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배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예전에 참 좋아했었는데 홍콩에서와는 다르게 여기에서는 별 유명해지진 않더라고요. 지금은 뭐하실까요? ^^;
  • 도로시 2007/10/11 21:45 # 답글

    viperwine//
    만자량이라는 배우... 악당역만 할 만큼 나쁜 인상도 아니고 <인지구> 같은 영화를 보면 선한 역할도 참 좋았는데 너무 지독한 악당만 연기하는 바람에 재능을 소진해 버린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최근에 무슨 광고인가 드라마인가에 나온 사진을 본 적이 있는 거 같은데 영화는 자주 출연 안 하더라구요..
  • hemingway 2007/12/11 10:00 # 삭제 답글

    극중 만자량의 악역을 스카페이스의 토니몬타나와 비교를 하시다니...생각할수록 상당히 적절한 비유이신듯. 영화에 대한 관찰력이 상당히 뛰어난 분 같으십니다 ^^
  • 도로시 2007/12/11 14:40 # 답글

    과찬이십니다... ^^;;;
  • 투룺 2008/04/05 09:12 # 삭제 답글

    추억의 영화 잘 짚어주신 글 잘 보고 갑니다. 당시 영화다이제스트라는 그냥 다이
    제스트를 베껴서 발행하던 월간지에 영웅호한에 대한 소개글 한토막이 떠오르네요.. '180의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주윤발의 호쾌한 액션신은 보는 이의 심장을
    뛰게 만들고 어쩌고 저쩌고.... ....' 저 당시에는 180이면 머리하나 더 큰 거구였심다.. ㅎ 어린 마음에 이 글보고 혹해서 마을 소극장에 걸리자 말자 쪼르르 쫒아가서 봤다는..ㅎㅎ 라스트신에 나오는 6연발 유탄발사기가 어떻게 터지나 그것만 궁금했던듯 하고 유덕화가 배타는 장면만 기억나는 걸로 봐서..만자량 얄팍한 표정도 기억나긴하지만.. 본문말마따나 별 내용없는 영화였는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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