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던 맷 벅크너 (일라이저 우드) 는 코카인을 소지한 룸메이트의 죄를 뒤집어쓰고 학교에서 쫓겨난다. 런던으로 건너온 맷은 누나 (클레어 포라니) 의 남편 스티브 던햄 (마크 워렌) 과 동생 피트 던햄 (찰리 헌냄) 을 만나게 되고 G.S.E라고 불리는 패거리들과 어울린다.
얼마 전 이탈리아의 프로클럽리그 세리에A 에서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대낮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벌어진 인터밀란과 라치오 팬들 간의 싸움은 경찰관의 발포로 한 명이 죽고서야 끝이 났다. 그 일로 인해 세리에B (2부리그) 와 세리에C (3부리그) 는 경기를 치르지 않기로 했고 AC 밀란의 미드필더 카카는 세리에를 떠나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열렬한 축구광이자 소문난 아스날의 팬인 닉 혼비는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 <피버 피치, Fever Pitch> 에서 "훌리건은 전체 축구팬들의 일 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훌리건의 존재는 언론에서 과장한 측면이 크다" 고 했지만 한 때 악명 높은 훌리건들로 골치를 앓았던 영국도 이탈리아 못지않은 광적인 축구 팬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훌리건스 - Green Street Hooligans, 2005> 는 딱 오해하기 좋은 영화다. 일단 훌리건스라는 제목부터 그렇고 축구라는 스포츠를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흔히 스포츠를 소재로 다룬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삶을 지탱하게 하는 무한한 열정, 시련은 있어도 좌절하지 않는 숭고한 의지에 대한 벅찬 감동일 것이다. 그러나, <훌리건스> 에서 그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팀의 열성적인 서포터들을 펌 (Firm) 이라고 부르거나, 라이벌 펌끼리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 "아스날은 팀은 좋은데 펌은 형편없고 토트넘은 팀도 펌도 엿같아" 같은 농담들은 축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흥미로운 부분이지만, <훌리건스> 는 스포츠 영화 하면 떠오르는 익숙한 공식 같은 건 있지도 않을뿐더러 내내 감도는 살벌한 분위기는 훌리건이라는 특정 부류와도 큰 상관은 없어 보인다.
맷은 결혼한 누나를 만나기 위해 런던에 도착한 첫 날부터 피트 패거리들과 어울리면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다. 비록 성적은 좋지 않아도 웨스트 햄의 펌은 팀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 하나 만큼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아스날 못지않은 사람들이다. 축구와 웨스트 햄이라는 공통점으로 엮여져 마음껏 에너지를 분출하는 G.S.E (Green Street Elite) 의 패거리들을 보면서 맷은 억눌린 감정을 쏟아낸다. 딱히 축구가 좋아서이기보다는 자신이 경험하거나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 막연한 현실에 대한 반발처럼 보인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훌륭한 저널리스트를 꿈꾸던 전도유망한 하버드의 청년이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쫓겨난 처지이니 불안한 현재의 도피처로 마음이 동했을 것이다.
설사 분출되는 욕망이 폭력적이라 해도 상관은 없다.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참을 수밖에 없었던 소심하고 나약한 맷에게 이보다 진기하고 속이 트이는 경험은 없다. 그 과정에서 맷은 거의 갱의 세력 다툼을 방불케 하는 훌리건들의 싸움, 아버지와의 갈등, 스티브의 숨겨진 과거가 뒤섞인 아수라장의 한 복판을 통과한다. 어린 시절 봤던 별 볼일 없고 지루한 아스날의 경기가 닉 혼비의 인생을 바꿔놓았다면 <훌리건스> 의 맷은 축구장의 바깥, 술집과 거리에서 폭력을 보고 배우며 성장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 성장에는 진통이 따른다.
과연 맷은 피트 패거리들과 어울리면서 무엇을 얻었을까. 축구에 대한 사랑과 열정, 친구를 저버리지 않는 의리와 믿음. 혹은 부당한 폭력에 맞서는 용기? 천만의 말씀. 맷은 폭력의 극단적인 광경을 목격하고는 미국으로 돌아가고 잃었던 하버드행 티켓을 되찾으려 한다. 이전의 맷이라면 상상할 수 없었던 약간의 협박과 폭력을 통해서 말이다. 맷을 키운 건 축구와 열정, 친구에 대한 믿음, 혹은 권력의 부당함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는 숨겨진 본성의 발현이다. 그렇게 맷은 폭력과 협잡이 가득한 어른들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는다. 좋건 나쁘건 맷은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을 터득하고 성장을 한 셈이다.
덧붙임
1. 감독은 홍콩 영화, 특히 오우삼의 영화를 많이 본 모양이다. 한 번 정과 믿음을 주면 끝까지 가는 남자들의 의리와 폼을 강조하는 것도 그렇고 마지막 부둣가에서 벌이는 훌리건들의 집단 싸움은 <영웅본색> 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2. 영화 속에 묘사된 훌리건들로 인해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구단은 <훌리건스> 를 매우 싫어한다고 알려졌다. 3. 그도 그럴 것이 영화 속의 웨스트 햄과 밀월 FC 펌의 관계는 정말 끔찍하다.









덧글
오랜만이네요.
자켓 버튼 목덜미까지 채우고 주머니에 손 찔러넣고 살짝 구부정하게 걷는 폼을 보면서 스내치에서의 제이슨 스테이덤이 생각났던 배우.
저 친구 상당히 멋있더구만요..
말 그대로 훈남..;;
그 정보 때문에 1편에 호기심이 동하는 중입니다...한번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