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이리저리 TV 채널을 돌리고 있는데 한 채널에서 <무한도전> 을 한다. "또야, 아니, 저기는 틀 때 마다 무한도전만 해." 그렇게 채널을 돌리는 데 마땅히 볼 것도 없고 해서 다시 <무한도전> 을 해주는 채널로 돌렸다. 아이스 원정대 특집은 서 너 번을 본 것인데도 볼 때 마다 낄낄거리고 웃게 된다.
내 방에 있는 기본형 케이블에서 <무한도전> 을 방영하는 채널은 네 곳이다. 일단 본 방이 방영되는 MBC는 제외하고 드라맥스, MBC 에브리원, MBC ESPN, MBC 드라마넷. 이 네 개의 채널이 일주일에 <무한도전> 을 내보내는 횟수는 엄청나다. 조금 과장하면 TV를 틀면 <무한도전> 이 나온다. 실제로 얼마나 방영하는지 확인하기는 귀찮지만 무한반복편성 하는 케이블의 특성상 그 체감도는 훨씬 높게 느껴진다. 특히, MBC 계열 채널의 무한도전 사랑, 혹은 재활용은 대단하다. 드라마, 오락, 스포츠, 게임을 가리지 않고 일주일 내내 방영을 해주니 오죽하면 <무한도전> 의 적은 MBC라는 말이 다 나올까. 아마도 가장 많은 채널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지기로는 <부부클리닉 - 사랑과 전쟁> 을 제외하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무한도전> 이 무모한 도전, 혹은 무리한 도전이라 불리던 시절 제대로 본 적이 거의 없다. 국내 유일의 3D 버라이어티를 자처하면서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과제를 실행하는 그 때야 말로 <무한도전> 의 이름에 걸 맞는 진정한 전성기라고 그리워하는 팬들도 있지만, 내가 <무한도전> 의 고정 시청자가 된 건 머리가 좋아지는 퀴즈, 거꾸로 말해요 아하! (퀴즈의 달인) 부터였다. 6명의 고정 출연자들이 아나운서가 제시하는 주제를 가지고 끝말잇기를 하는 방식, 당시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던 <상상플러스> 를 염두에 둔 듯한 콘셉트는 진부하고 안일하기 짝이 없었지만 각각의 역할을 분담 받은 6명의 캐릭터,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남자들이 보여주는 지극히 원초적인 속성이 재미있었다.
늘 1인자인 유재석 때문에 자기가 못 크는 거라고 박명수가 호통을 치고 어깃장을 놓으면 유재석이 이를 수습하고 다른 멤버들이 유재석 편을 들면서 박명수를 구박하다가도 어느 새 분위기가 반전되어서 누군가를 왕따 시키고 바보로 만드는 권력 지향적인 속성. 필요에 따라 내 편, 네 편 가리지 않고 남을 깔아뭉개고 비난을 서슴지 않던 무한 이기주의. 그런 모습이 가끔은 얄밉고 짓궂어서 정도가 심한 거 아니야 싶긴 해도 불편하고 가학적이지만은 않은 건 스스로를 대한민국 평균 이하, 뭔가 조금씩 2%가 부족하다고 강조하듯이 어딘지 빈 틈 많아 보이는 캐릭터들 덕분이다. 어디에 내놔도 못나 보이는 6명의 캐릭터들이 유치한 말싸움을 벌이고 꼼수를 부리면서 아옹다옹하는 모습, 고작 바나나 한 개 (멤버들을 움직이는 유일한 아이템) 를 먹기 위해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무모한 몸개그는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다.
각 채널을 오가면서 <무한도전> 6명의 캐릭터들이 변하는 과정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이를테면 건방진 뚱보였던 정형돈이 정준하가 들어오면서부터 어색한 뚱보가 되었다가 존재감 없고 웃기지도 않는 캐릭터로, <무한도전> 유일의 꽃미남이었던 하하가 이효리 특집 이후부터 못났다고 구박받으면서 무한단신 꼬마로 전락하고, 노홍철이 퀵 마우스에서 돌+아이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그러고 보니 <무한도전> 에서 가장 캐릭터의 변화가 많은 사람은 박명수고 가장 적은 것이 유재석이다. 박명수는 호통 개그로 시작해서 요즘의 찮은이형까지 수많은 캐릭터를 만들어냈지만 유재석은 비디오를 즐겨보는 것 외에는 딱히 기억나는 게 없다.
TV만 틀면 해주던 <무한도전> 이 재방송 관리에 들어간단다. "프로그램이 케이블에서 지나치게 반복 재생됨으로써 출연진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소진시킬 가능성을 염려" 해서라고 하는 데 그런 우려가 MBC 계열사는 제외하고 라니 조금은 궁색 맞아 보인다. 어쨌든, 너무 많은 곳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지니 살짝 지겨울 만도 한데 <무한도전> 은 볼 때 마다 재미가 있다. 요즘 <무한도전> 이 예전 같지 않다는 소리를 들으며 슬슬 종방설이 나돌고 있긴 하지만 무심코 TV 채널을 돌리다 보게 되는 건, 볼 때 마다 배를 잡고 웃게 되는 건 역시 <무한도전>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