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TV 채널을 돌리다 보게 된 지식채널e는 정체가 모호해 보였다. 일체의 나레이션없이 자료화면과 음악, 자막으로 채워진 감각적인 화면은 어떤 프로그램의 소개인 것도 같고 또 흔한 공익 캠페인 같기도 했다. 그러나 언뜻 봐도 만만찮은 공을 들인 화면과 음악은 단번에 눈과 귀를 잡아끈다. EBS에서 방영중인 <지식채널e> 는 5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정치, 사회, 문화, 경제, 교육, 역사, 과학, 스포츠등 거의 모든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지식을 뽐낸다. 그들이 생각하는 지식은 '암기하는 정보가 아니라 생각하는 힘, 현학적인 수사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메시지, 빈틈없는 논리가 아니라 비어있는 공간' 이다.
비교적 꼼꼼하게 정리된 객관적 증거는 단순히 지식을 나열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 과 '왼손에 관한 짧은 진실' 은 모두 똑같은 인간을 만들어 내는 주입식 교육 (이런 내용을 교육방송에서 한다는 게 웃기는 일이긴 하지만) 과 불필요한 선입견이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는지를, '나는 피카소다' 에서는 피카소에 대한 흥미로운 두 가지 생각을 보여준다. 또, '화양극장 - 서울의 마지막 단관극장' 은 누군가의 사춘기가 고스란히 담겨있을 공간을 불러내어 사라지는 것의 쓸쓸함을 얘기 한다. 지식채널e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처음부터 모르고 있었던, 혹은 관심을 두지 않았던 대상들을 꺼내어 다시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소통을 가로 막는 소외와 차별, 지식의 방향성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지식채널e> 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동력이다. 때론 <지식채널e> 가 보여주는 지식의 메시지가 지나치게 감정에 호소하고 많은 주제를 다루다 보니 오해와 모순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다 같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누군가를 짓밟거나 외면하는 방법으로는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로써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그 어떤 대단한 이념이나, 명분도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소망위에 존재할 수 없다" 는 제작진의 말처럼, 지극히 보편타당한 상식에 대한 믿음은 뭉클하고 명징한 울림을 전해준다. 그리고 꾸준히 <지식채널e> 를 보게 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듣는 즐거움을 만끽해주는 좋은 음악의 선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