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정보 없이 보게 되는 영화가 의외의 즐거움을 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미리 이런 저런 정보를 알고 볼 때 보다 선입견을 가지게 될 확률이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훨씬 자유롭고 편한 마음으로 영화를 받아들이게 될 여지가 많고 그런 의외의 느낌은 다른 영화들 보다 오래가기 마련이다. 문제는 정보의 바다를 넘어서 정보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살고 있는 시대에 자의 건 타의 건 그런 경우를 거의 만나보기 힘들다는 것. <무지개 여신 - The rainbow song, 2006> 은 한 때 열렬하게 사랑했던 (지금도 마음속에 팬심을 간직하고 있는) 우에노 쥬리가 나온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고 있지 못했다. 뒤늦게 도착한 편지로 인해 누군가의 진심을 알게 된다는 영화의 이야기도, 아오이 유우가 조연으로 출연하고 제작자가 이와이 슈운지라는 것도 영화를 보는 도중에야 알았다.
<무지개 여신> 은 참 전형적인 일본 영화다. 이야기도 그렇고 형식도 그렇다. 그저 우정인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사랑이더라는 뒤늦은 감정, 누군가의 마음이 까맣게 타 들어갔을 진심을 되돌아보는 과정은 이미 이와이 슈운지를 비롯한 수많은 일본의 청춘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무지개 여신> 은 익숙하고 진부해져 버린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 또한 거개의 일본 영화처럼 느릿하고 밋밋하다. 멍청하고 우유부단한데다 눈치까지 없는 토모야 (이치하라 하야토) 와 그의 모든 단점이 좋다던 아오이 (우에노 쥬리) 의 사랑과 우정사이는 총 일곱 개의 단락으로 나뉘어져 밍숭맹숭한 듯 소소하게 감정을 담아낸다. 자극적인 조미료가 없다는 점에서 담백하긴 하지만 결을 따라가기도 전에 지루해질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요상한 계기로 친구가 된 토모야와 아오이는 늘 붙어 다닌다. 함께 단편 영화를 찍으며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신사 축제에 가서 아오이의 동생 카나 (아오이 유우) 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대부분의 하루하루가 그렇듯 특별할 것도 없다. 그냥 그렇게 그들은 함께 있고 같은 장소와 시간을 공유하면서 엇갈린 감정을 만들어 나간다. 그걸 누군가는 사랑이라 생각하고 또 누군가는 너무 가까이 있어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딱히 토모야가 무심한 사람이라고 면박을 주기엔 아오이는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앞을 못 보는 카나가 사라지자 토모야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치는 아오이를 보면 진짜 친구 같아보여서 그 마음을 짐작하기도 어렵다. 겉으론 씩씩해 보여도 수줍기만 한 아오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말 없이 지켜보다 좋아하는 여자 앞에게 어떻게 고백을 할까 고민을 하는 토모야의 등을 힘껏 밀쳐주는 것뿐이다. 그 순간, 멈칫하는 아오이의 표정은 짧지만 강하게 다가온다.
<무지개 여신> 은 그 잠깐의 순간을 담고 있다. 남의 속도 모르는 토모야가 장난처럼 던진 프로포즈에 찢어질 듯 마음 아프다가도 "너의 우유부단함이 좋아, 너의 끈기 없는 점이 좋아, 너의 둔감한 점이 좋아,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는 점이 좋아, 특히 웃는 모습이 좋아" 라고 기어이 말하게 만드는 감정의 근원은 토모야가 10만엔짜리 지폐로 반지를 만들어 아오이의 손가락에 끼워주면서 '함께' 무지개를 바라보던 순간,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마음이 들고야 마는 그 시간, 그 장소의 벅찬 '설렘' 이었을 것이다. 문득 하늘의 무지개를 보고 미국에 있을 아오이가 생각나 사진을 찍어 보낸 토모야도 마찬가지였으리라. 토모야는 아오이에게 이런 말을 한다. "1년 동안 지겹게 쫓아다닌 여자가 있었어. 스토커처럼 말이지. 그러다보니 정이 들어서 사귀었는데 3번 데이트하고 차여버렸어." 결국 시간이 지나면 변하게 마련인 그 찰나를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와이 슈운지만은 아닌가 보다.
덧붙임
지폐로 만든 반지는 참 로맨틱하다. 나중에 방법을 알아서 써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다메 칸타빌레> 는 첫 편만 보다 말았는데 언제 다 보지 싶다. 우에노 쥬리 만세, 만세,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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