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다른 일은 안 하고 영화만 보면서 산다. 한 때 나마 열렬하게 영화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었을 궁극의 환상일지도 모른다. 광주국제 영화제에서 상영된 적이 있는 <시네마니아 - Cinemania, 2002> 는 그런 사람들이 주인공인 다큐멘터리 영화다. 고령의 할머니부터 중년의 이혼남, 젊은 청년까지. 다섯 명의 사람들은 자칭 타칭 시네필이라 불리는 대단한 영화광이다. 대부분은 특별한 직업도 없이 혼자 살고 있으며 국가에서 주는 연금으로 근근이 생활하면서 하루의 전부를 영화관에서 보낸다. 그들은 일반적인 복합상영관과 소규모의 아트 하우스를 찾아다니고 TV와 비디오로 매년 600편이 넘는 영화를 본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영화를 보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다. 그들이 사는 곳은 뉴욕이다.
으레 대부분의 영화광이 그렇듯이 다섯 명의 시네필은 남들보다 많이 봤다는 것을 자랑스러운 듯 여기고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할 때면 영화광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은근하지만 대단한 자부심도 엿보인다. 원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을 때는 마치 갓 사랑에 빠진 달뜬 소년 소녀들 같다. 그들은 자주 가는 영화관에서 만나 얼굴을 익히고 어느새 친구가 된다. 혼자만의 감상을 벗어나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면서 직접적인 소통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영화광으로서는 부러울 것 없는 하루하루를 사는 셈이다. 아마도 이들 같은 열성적인 시네필이 있었기에 뉴욕의 시네마테크 라이브러리는 더 풍성해졌을지도 모른다.
이들 다섯 명은 진정 자신이 살고 싶은 인생을 사는 것 같지만 한 편으론 막막한 현실에 대한 도피의 방법으로 시네필이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하루 종일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도 모자라 혼자 집에 있는 시간에도 비디오를 틀어놓는다. 정성이 대단하다고 감탄만 하기에는 어딘가 불안해 보이며 거의 모든 에너지를 영화에 쏟아 붓고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그래서 직업과 가족 없이 살아야 하는 그들은 영화 이외의 것들이 위태롭고 삐걱거린다. 그들에게 영화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 막혀있는 욕구를 해소하려는 어쩔 수 없는 생존의 방식처럼 보인다. 스스로도 그렇노라고 고백한다. 뉴욕 시내의 영화관과 거리, 집에서 벌어지는 인터뷰는 점점 현실과 환상의 구분이 모호한 그들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왜 그런지에 대한 나름의 사연들도 있다.
하루 종일 영화만 보고 살아가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춘 뉴욕에서 과연 다섯 명의 시네필은 영화광으로서 또는 현실을 살아가는 개인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언제나처럼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면 그런 질문은 의미가 없어진다. 오직 영화관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 영화를 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