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의 한 마을에 검게 탄 시체가 발견된다. 곧이어 나타난 수상쩍은 방문자는 모두 다 죽고 말 것이라는 경고를 한다. 마을의 사람들은 누군가로부터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고 방문자의 경고는 하나 둘 현실이 되어간다. <써티 데이즈 오브 나이트 - 30 days of night, 2007> 에서 30일 동안 해가 뜨지 않는 마을에 나타나 잔인하게 사람들을 죽이는 살인자는 뱀파이어다.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이놈들은 요즘 뱀파이어 영화의 일관된 경향처럼 빠르고 강하다. 총을 쏴도 거의 소용이 없고 정글의 야수 같은 날랜 움직임과 강한 힘으로 상대를 완전하게 제압한다. 뱀파이어와 인간의 싸움은 거의 액션 영화를 방불케 한다.
뱀파이어 무리를 죽이기 위해 빛을 내리쬐고 목을 쳐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기까지는 영화의 반이 지나야 한다. 그 와중에 152명이던 마을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도입부에 외지로 떠난 사람을 제외하더라도 절반 이상은 희생당하지 않았을까). 하얀 눈밭을 뛰어다니며 집단으로 사람들을 학살하는 장면을 하나로 잡아내는 것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다. 하얀 눈과 선홍빛의 피로 칠갑한 마을의 이미지는 보는 즐거움을 준다. 분명 뱀파이어가 떼로 나오는 공포 영화의 짜릿한 재미 중 하나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다.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 하룻밤을 뒤로하고 영화는 갑자기 7일 후로 시간 이동을 한다.
어차피 30일이라는 시간을 버티려면 무작정 마을 사람들을 구석에만 몰아넣을 수는 없을 터, 뱀파이어에게도 약점을 주어야 할 텐데 뱀파이어의 식량 창고가 되는 배로우는 30일 동안 해가 뜨지 않는 알래스카의 마을이다. 살을 에는 알래스카의 추위가 뱀파이어의 후각을 마비시킨다 (그래서 숨은 사람들을 쉽게 찾아내지 못한다) 는 원작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온 것은 별개로, 다락에서 식료품 가게, 경찰서로 근거지를 옮기는 세 번의 긴 과정을 거치면서 뱀파이어의 존재가 희미해지는 것은 썩 괜찮은 기본 설정에서 가지치기를 하지 못한 각본과 연출상의 약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약간의 사전 준비와 월등한 힘으로 기세등등하게 마을을 점령한 호기는 어디로 갔는지, 입가에 흥건한 피를 튀기면서 너희들 모두 죽여 버리고 말테야, 라는 협박은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 게으른 뱀파이어 무리는 마을 사람들이 먼저 움직이지 않는 한 꼼짝도 하지 않는다. 국내용 포스터에 적힌 문구를 그대로 인용하자면 '해가 뜨지 않는 30일. 놈들이 온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안 (못) 한다. 딱 한 번 미끼를 던지는 것을 빼고는 말이다. 자신만의 언어로 '신 따위는 없어, 인간은 어리석은 파괴자에 불과해' 같은 대사를 외친다 한들 뭐 어쩌란 말인가. 여전히 게으른 놈들에 불과한 것을.
뱀파이어의 '복지부동' 은 마을 사람들에게 30일을 버틸 수 있게 하지만 시간은 무의미하게 흐르다 급작스레 튀기를 반복한다. 뚜렷한 이유와 대상 없이 불특정 다수에게 공포를 주는 것도 아니고 인간을 말살하기 위한 특별한 목적이 있음에도 30일 동안 빈둥대기만 하다가 마지막 날이 돼서야 마을을 불태우는 이놈들을 보고 있노라면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는 건지 의뭉스러울 만도 하다. 어쩌면 뱀파이어가 되기 전의 이놈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만 무언가 하고 마는 천하의 게으름뱅이들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고립된 공간에서 외부의 적에 맞서는 30일의 시간은 느슨하다. 해가 뜨지 않는 30일 동안 뱀파이어로부터 살아남는다는 원작의 설정만 가지고는 여러 가지로 버거웠던 탓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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