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철 감독의 <자마 - 刺馬 ,1973> 를 보고 나면 딱 적룡을 위한 영화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영화 속에서 최후를 장식하는 것은 장원상 (강대위) 이고 그의 입을 통해 어떻게 세 남자가 만나 우정을 쌓고 야망을 키워가다 원수가 되었는지를 더듬어 가지만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적룡이다. 장철의 영화에서 가장 많은 주인공으로 출연한 강대위의 백만 불짜리 썩은 미소도 적룡의 카리스마에는 미치지 못한다. 세상의 중심이 되겠다는 큰 뜻을 품은 미소년에서 야망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마신이를 연기하는 적룡은 약간의 분장과 표정만으로 선과 악을 넘나드는 상반된 이미지를 보여줄 뿐 아니라, 그 단단한 육체의 황홀한 쾌감을 선사한다. 이는 장철이라는 감독의 장기이기도 하다.
남자의 몸에 대한 장철의 집착, 특히 적룡의 벗어젖힌 상체를 감상하는 페티쉬적인 취향은 <자마> 에서도 여전하다. 척 보기에도 대단한 운동과 수련을 통해 만들어진 것 같은 적룡의 탄탄하고 조각 같은 몸매는 탄성이 나올 정도로 아름답고 자체로 은밀한 에로티시즘에 가깝다. 냇가에서 후앙 (진관태) 의 아내와 마신이가 욕정에 이끌릴 때에도, 모두를 파국으로 몰고 갈 하룻밤을 지새우고 난 다음에도 카메라가 머무는 곳은 여자의 몸이 아니라 적룡의 벗은 상체다. 어느 누가 남자의 벗은 몸을 이리도 육감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왕우의 칼부림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시대가 됐고 깡마르고 왜소한 강대위의 몸으로는 한계가 있었을 터이니 만에 하나 적룡이 없었다면 장철의 일관된 취향은 그리 빛을 못 봤을 것이다. 그 시절의 적룡은 남자가 봐도 반할만큼 섬세하고 여린 얼굴과 강인한 몸을 가진 배우였다.
영화는 유난히 추락하는 모습을 강조한다. 야트막한 언덕과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추락의 이미지는 서너 번에 걸쳐 나오는데 너무 확연하게 눈에 뜨여서 웃음이 날 정도다. 급격하게 풀 샷과 클로즈업을 오가면서 액션의 리듬을 잡아내는 와중에도 별 상관없는 단역의 죽음까지 매우 천천히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심지어 대놓고 뱅글 뱅글 구르는 장면을 멈춰 놓기까지 하며 후앙의 마지막 뒷모습을 바라보는 장원상의 시선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한다. 예상했던 대로 후앙은 언덕에서 구르며 죽음을 맞는다. 결투 장면 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과장해서 들려주는 것만큼이나 괴이하고 뜬금없어 보이지만 살기등등한 순간에 삽입된 고요하고 아득한 추락의 이미지는 모든 것을 거역할 수 없는 운명으로 만든다. 우정, 야망, 치정, 배신, 복수가 뒤엉킨 세 남자의 파국은 예고된 셈이고, 서로의 배에 칼을 꽂고 살집과 내장을 후벼 파내고 나서야 끝이 난다.
후앙과 마신이의 죽음이 교차되는 장면은 <자마> 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은 오우삼의 <첩혈가두> 와는 또 다르다. <첩혈가두> 에서 아휘 (장학우) 의 머릿속에 박힌 총알은 세 친구를 망가트린 끔찍한 현실마저 기억하고 싶어 하는 처절한 몸부림처럼 보이지만 <자마> 에서 마신이의 배를 찌르고 비틀린 채로 튀어나오는 칼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 비정한 세상에 대한 직설적인 냉소 같다. 두 영화가 정서적으로 일치하면서도 다른 것은 낭만과 비정함을 다루는 방식의 차이일 것이다.
늘 장철 영화의 주인공은 수많은 적에 둘러싸여 자신의 존재를 시험 당하고 끝내는 자살에 가까운 죽음을 맞는다. <자마> 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마신이를 죽이고 붙잡힌 장원상이 구구절절한 사연을 글로 남겨 놓는다 한들 사람들은 관심조차 없고 오히려 죽음을 은폐하거나 반긴다. 살인 사건을 맡은 조정의 관리들이나 마신이의 부하에게 중요한 것은 진실이나 상관의 복수가 아니다. 바라는 건 여러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 장원상이 소리 없이 죽어주는 것이다. 평생을 산 속에 살며 도적질을 일삼던 후앙과 장원상은 물론 선과 악의 사이에 놓인 마신이도 어중간하게 끼여 파멸을 자초한다. 영악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장원상의 행동은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비웃음은 막판으로 갈수록 더욱 노골적이 되어 간다.
살아남겠다는 의지나 욕망이 없는 자기 파괴적인 최후는 모든 것이 과잉인 스타일과는 다른 지점에서 한층 더 비장하다. 큰 기둥에 묶여 심장을 난자당한 채로 죽은 장원상을 뒤로 하고 주변인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웃고 떠든다. 그 순간 홍콩 영화에 낙관처럼 찍히는 종극이란 글자는 선연하다. 세상이란 매우 잔인하고 배신이 넘쳐나는 곳이며,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결국 패배할 것이다, 라는 장철의 비관은 참 지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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