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단 코엔, 클로드 를루슈, 아톰 에고얀, 챠이 밍량, 구스 반 산트, 엘리아 술래이만, 켄 로치, 아모스 기타이, 조엘 코엔, 라스 폰 트리에, 데이빗 크로넨버그, 난니 모레티, 빌 어거스트, 뤽 다르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 빔 벤더스, 로만 폴란스키, 헉헉. 아직 멀었다. 이제 길고 긴 명단의 겨우 중간일 뿐이다. 다시 숨을 고르고, 레이몽 드파르동, 제인 캠피온, 장 이모우, 유세프 샤힌, 월터 살레스, 쟝 피에르 다르덴, 라울 루이스, 첸 카이거, 허우 샤오시엔, 왕가위, 올리비에 아사야스, 아키 카우리스마키,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 마이클 치미노, 테오 앙겔로풀로스, 기타노 타케시.
그다지 영화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한 번은 들어봤음직한 이름이고 그보다 더 많은 관심이 있다면 이름만 들어도 황홀해 하며 밤새 좋아하는 영화와 장면을 놓고 수다를 떨게 할 유명한 영화감독들이다. 개중에는 왜 여기에 이름을 올렸을까 의아한 사람도 눈에 띄지만, 흔히 거장이라 불리는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칸 영화제의 단골손님이자 집행부에서 총애해 마지않는 로열패밀리들이라는 것이다. 칸 영화제 60주년을 기념해 만든 영화 <그들 각자의 영화관 - Chacun Son Cinema Ou Ce Petit Coup Au Coeur Quand La Lumiere S'Eteint Et Que Le Film Commence, 2007> 은 이들의 영화를 발견하고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명성을 준 칸 영화제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종합선물세트다.
이 종합선물세트에는 영화에 대한 대단한 열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감독들이 같은 주제로 영화를 만들어야 했을까, 싶은 생각에 잠시 투덜거리게 된다. 여기에는 주최 측이 원하는 범위에 맞춰 영화를 만들어 낸 모범생도 있고 그렇지 않은 반항아도 있다. 영화관이라는 하나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총 서른네명의 감독이 만든 서른세편의 단편들은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는 감독의 스타일만큼이나 다양하고 빛이 나지만 한 편으론 소화불량에 걸리기 십상이다.
3분이라는 시간 동안 영화관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원칙은 진지하고 유머러스하며 때론 낭만적이다. 여기에서 그들의 영화를 모두 언급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도 대충만 추려보자면,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세상이 끝나는 날 영화관에서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유태인의 이야기를 한 장소에서 한 컷으로만 찍어 이 프로젝트의 제작비를 절감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우고 라스 폰 트리에는 영화감독으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의 폭력적인 충동을 보여준다. 두 에피소드는 감독이 주연을 겸하고 있는데 망치로 사정없이 머리를 박살내는 라스 폰 트리에의 연기는 정말 끔찍하면서도 웃기다.
구스 반 산트는 스크린 속의 여배우와 사랑에 빠졌노라고 수줍게 고백하고 클로드 를르슈는 자신의 부모가 어떻게 영화관에서 만나 결혼을 했고 영화감독으로 살아갈 수 있는 영감을 주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영화에서 가장 낭만적인 기운을 풍기는 에피소드들이다. 특히 끌로드 를르슈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영화관 안에서 밀고 당기는 연애담은 할리우드의 고전 멜로 영화를 연상케 한다. 영화 속에 흐르는 'cheek to cheek' 을 따라 부르며 데이트를 신청하는 장면은 왜 끌로드 를르슈가 <남과 여> 라는 멜로 영화를 만들게 되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또한, 왕가위와 차이 밍량은 영화관의 어두컴컴한 공기 속에서도 특유의 색감을 보여주며 아모스 기타이와 빔 벤더스는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갔고 현재도 변함이 없는 영화관 바깥의 일들을 이야기 한다. 허우 샤오시엔의 카메라도 여전히 묵직하다.
가장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꼽으라면 중국의 어느 마을에서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상영하는 도중 전기가 끊기자 꼬마들이 자전거로 전기를 만들어 내 영화를 보는 첸 카이거의 <Zhanxiou Village> 다. 천진난만하게 채플린의 영화를 보며 웃는 아이들과 마지막에 숨어있는 작은 반전은 찡한 울림을 준다. 또, 영화관에서 가장 억세게 재수 없는 사람은 남녀의 정사 장면이 시작되자마자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어서 주변 사람들의 오해를 받는 이층에서 떨어진 한 남자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시네마 에로띠끄) 일 것이다.
이 서른네명의 감독에게 영화란 무엇일까. 혹은 관객에게 영화를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일까. 빌 어거스트의 <The Last Dating Show> 에서 한 남자는 덴마크어를 모르는 여자를 위해 영어로 통역을 해주다 주위에 있는 관객들과 마찰을 일으킨다. 순식간에 분위기는 험악해지고 남자와 여자, 소란을 피운 몇 명은 쫓겨난다. 헬멧을 가지러 다시 상영관으로 간 남자는 영화에 빠져 여자를 내버려 뒀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함께 소란을 일으킨 세 남자는 혼자 있는 여자에게 다가가고 남자는 뒤늦게 여자를 찾아보지만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만다. 결국 남자가 여자를 찾아낸 곳은 영사실이다. 혹시 일을 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배반이라도 하듯이, 그들은 보다 만 영화의 다음이 궁금해서 못 참을 지경이고 영사실에 모여 숨을 죽이며 영화를 보고 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로미오와 줄리엣> 을 보고 있는 관객의 다양한 표정만으로 에피소드를 채워 놓는다.
그들은 하나 같이 스크린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공유한다. 각각 다른 생각과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영향을 주고받는 그 기묘하고 전율스런 감정의 교류는, 영화관만이 가진 독특한 정서다. 그것은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시설을 갖춰놓는다 한들 집 안에서 혼자 보는 영화가 뭐 그리 재미있을까. 앞서 말했던 첸 카이거 영화의 결말이 감동스러운 것은, 꼬마와 시각 장애인 사이에서 이심전심으로 전해지는 소통의 느낌 때문이다. 그것이 유럽의 어느 낡고 오래된 영화관이건, <키즈 리턴> 과 <400번의 구타> 를 상영하는 일본과 브라질의 작은 영화관이건, 혹은 영화를 보는 것이 마을의 잔치가 된 중국의 어느 외딴 마을이건 불이 꺼지고 영사기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스크린에 투영되면 모두를 사로잡는 그 중독과도 같은 마법은 영화가 주는 가장 환상적인 선물일 것이다.
덧붙임
한글 제목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소개된 제목을 따랐음. 영화제에서 보고 난 다음 끼적거린 메모에 기초한 글이라 영화에 대한 기억이 틀릴 수도 있음. 사진은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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