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이 넘은 실베스터 스탤론은 <람보 4: 라스트 블러드 - Rambo, 2008> 에서 미얀마의 정글을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며 수도 없이 화살과 총을 쏘아댄다. 몇 장면이 삭제된 티가 나긴 해도 충격은 어마어마하다. 순식간에 사람의 사지가 절단되고 살점이 분쇄되어 퍼지고 피는 흥건하다. 무차별적인 살육은 여자나 아이도 가리지 않는다. 뼈와 살이 분리되는 액션은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웬만한 난도질 영화를 뛰어넘는 수준까지 도달한다. 1편을 제외하면 이전의 람보 시리즈도 잔인한 축에 속하는 영화였으니 연속성을 이어가는 가는 것이긴 할게다.
20년 만에 다시 돌아온 존 람보, 혹은 실베스터 스탤론은 왜 이렇게 잔인해졌을까. 작정하고 만든 난도질 영화야 다 웃어보자고 하는 것일 테지만, 동시대를 함께 했던 브루스 윌리스나 아놀드 슈왈제네거에 비해 유머감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람보의 무표정한 대량학살은 더욱 끔찍해 보인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람보가 해적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이 사람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몰랐는데 시놉시스를 보면 해적이라고 나온다) 들의 시체를 불태우는 장면이다. 선교사 일행을 카렌족 마을로 데려다 준 람보는 전날 의도하지 않은 사고로 죽인 해적들의 배와 마주친다. 배 안 여기저기에 휘발유를 뿌리던 람보는 자신이 죽인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를 밟고 지나친다. 클로즈업으로 잡힌 이 장면에서 그의 발밑에 도저한 피는 평생을 살인기계로 살아온 그의 인생을 말해주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베트남전의 영웅이었지만 조국에서 추방당한 채로 타지를 떠돌던 람보는 '라스트 블러드' 에 이르러 원 없이 피를 쏟아내고서야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제 그에겐 상관이자 아버지와 같았던 트라우트만 대령 (을 연기한 리차드 크레나는 2003년에 사망했다) 도 없고 심각한 표정으로 아시아의 분쟁지역을 골라 다니며 혈혈단신으로 싸우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무엇보다 전쟁이 남긴 상흔으로 고통 받는 퇴역군인에서 타고난 전사로 거듭났던 그가 발밑으로 흘려보내야 했던 피의 양은 지나치게 많았다.
조국과 전쟁터, 그 어디에서도 평화로울 수 없었던 이 어둡고 불안한 영웅을 떠나보내는 심정은 주름진 실베스터 스탤론의 육체를 보는 것만큼이나 묘하다. 왜 떠나야 할 때를 모르고 튀어나왔느냐고 내치기도 힘들다. 냉전시대를 상징하는 액션 영웅에게 납득할만한 '올바름' 을 바라는 것도 새삼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부디 먼 길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온 람보에게 '당신이 구해야 할 사람' 이 있다며 군복을 입은 남자가 들이닥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 Hello, Goodbye. John R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