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3월 28일
의료보장제도, 돈과 생명의 거래 - Healthcare: Your Money or Your Life, Part 1, 1977

뉴욕시의 킹스 카운티 병원은 일 년에 백만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진료를 받으러 올 정도로 큰 시립 병원이다.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기댈 곳은 여기 밖에 없다. 그러나 시의 예산 삭감으로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한 병원의 인력은 절반 이상으로 감축되고 환자의 치료를 위한 물품과 의료설비는 아예 없거나 낡아서 제 기능을 못한지 오래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로 돌아간다. 의사의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하고 그 시간 동안 병은 악화되어 간다. 운이 좋아 진료를 받는다고 해도 약을 구할 수가 없다. 심지어는 고장 난 기계를 수리할 작은 부품이 없어 눈앞에서 환자가 죽어가는 걸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한다. 안타깝지만 킹스 카운티 병원에서는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반면에 킹스 카운티 병원 맞은편에 있는 다운스테이트 메디컬센터는 최신식의 의료 설비와 유능한 의료진을 갖춘 곳이다. 민간의료보험의 혜택을 받는 이곳은, 돈만 있으면 기다리지 않고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처방전에 쓰인 것과 비슷한 약을 먹지 않아도 되며 쾌적한 환경에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물론 여기에서도 하루하루 치료비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최소한 킹스 카운티 병원에서처럼 고장 난 심장박동기의 전극선을 교체할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존 알버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의료보장제도, 돈과 생명의 거래 - Healthcare: Your Money or Your Life, Part 1, 1977> 가 보여주는 31년 전 미국의 모습이다.
어느 병원의 응급실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영화의 초반에 보여지는 킹스 카운티 병원의 응급실은 눈 뜨고 지켜보기 어렵다. 순식간에 죽고 사는 환자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서기도 하지만, 그런 긴박하고 안타까운 순간이 전혀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심장발작을 일으킨 환자를 예산이 없어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게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이런 이해 못할 일이 벌어지는 것은 미국의 의료체계가 민간업자에 의해 주도되면서 부터다.
늘 치료 받아야 할 사람은 많고 지원해 줄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언젠가는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는 의료보장 제도를 민간사업자가 담당하면서 의료산업은 급속하게 커져간다. 병원과 관련업체는 더 많은 돈벌이를 위해 투자한다. 하지만 그에 따른 이윤의 추구는 치료받아야 할 환자들을 병원 밖으로 몰아낸다. 당장 생활하기에도 빠듯한 이들에게 비싼 민간의료보험은 사치스런 일이고 치료를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 해도 어찌할 방법이 없다. 돈 없고 아픈 사람에게 최소한의 의료서비스도 보장해줄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득을 보는 건 병원과 제약, 보험회사, 그에 관련된 산업이다. 한 의사는 마치 인간의 생명이 패션처럼 소비되는 상품으로 전락했다고, 돈이 없어 빤히 사람이 죽어나가는 걸 방치하는 정부의 무책임이 나치의 대량학살과 무엇이 다르냐고 한탄한다.
"모든 사람은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하죠. 부자든 가난하든. 부자들에게는 그럴지 몰라도 가난한 사람에게는 그런 권리조차 없어요."
수십 년 전 의료체계의 불합리함을 지적하는 어느 환자의 말은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해 보인다. 곧 개봉될 마이클 무어의 <식코 - Sicko, 2007> 는 그걸 증명한다. <의료보장제도, 돈과 생명의 거래> 는 사회적 약자를 사지로 몰아넣는 미국 의료체계의 비인간성과 모순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불행하게도 이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언제나 가난한 사람이 아픈 것은 천형에 가까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완화 (또는 폐지) 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대통령과 당이 정권을 잡은 지금, 돈 없으면 아프지도 못한다는 자조 섞인 우스개가 피눈물이 되어 돌아올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 by | 2008/03/28 10:17 | f i l m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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