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서독 리덕스 - Ashes Of Time Redux> 의 개봉을 앞두고 여러 가지 관련소식들에 마냥 들뜨고 행복해지는 지금, 뜬금없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바로 같은 배우와 스태프가 만든 <동성서취 - 射英雄傳之東成西就,1993> 다. <동사서독> 의 제작이 한 없이 길어지자 배우들의 이탈을 막고 제작비 회수를 위해 명절용으로 뚝딱 만들었다고 알려진, 혹은 영화가 정말 후지면서 웃긴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동사서독> 보다 숨은 팬들이 많다고 알려진 전설 (?!) 의 그 영화다. 잠깐 개봉당시를 회상하자면 대한극장의 그 큰 스크린으로 홍콩판 우뢰매 (?!) 를 보는 느낌은 상당히 묘했다. 차마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기기묘묘하고 조잡한 상상력, 그걸 천연덕스럽게 보여주는 뻔뻔함, 망가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들의 과감 무쌍한 연기, 특히 구양봉역을 맡은 양조위의 부처님 귀와 부어터진 소시지 입술은 아니, 저 곱고 여린 청년이 왜 저렇게 망가지는 거야, 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이다.
이 영화의 공동 제작자이자 연출과 각본을 담당한 유진위와 왕가위가 <동사서독> 을 만들면서 받았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다고 전해지는데, 그래서인지 두 사람은 <동사서독> 을 만드느라 받았던 스트레스를 <동성서취> 에서 작정하고 푸는 듯 보인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 의도적으로 <동사서독> 을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캐릭터를 엉망진창으로 섞어놓는다. 좋게 말하면 몰두하던 대상을 부정함으로서 오히려 긍정하는 창조적인 해체라고 할까. 그래서 사랑하는 여인을 잊지 못해 사막에서 홀로 지내는 '구양봉' 은 기생오라비 같은 '황약사 (장국영)' 가 되고 친구의 아내를 사랑한 '황약사' 는 신선이 되고 싶어 삼공주와 결혼을 파기한 '단황야 (양가휘)' 가 되며 아내의 불륜을 목격한 취생몽사의 장님 무사는 다시 소시지 입술의 '구양봉 (양조위)' 이 된다.
마치 쇼브라더스 영화처럼 가상의 공간임을 대놓고 드러내는 세트와 야외 촬영장에서 벌어지는 '뮤지컬 코미디 게이 로맨스 활극' 은 뻔뻔할 뿐 아니라 실로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개그의 집대성이다. 악연으로 만난 홍칠 (장학우) 과 구양봉이 옥신각신하는 길고 긴 소동 (정말 길다), 추레한 몰골로 변한 구양봉과 홍칠이 황약사의 사매 (왕조현) 를 위해 듀엣으로 부르는 눈물겨운 사랑의 세레나데, 신선이 되려다 만 단황야의 머리가 축구공이 되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모양새나 모여라 꿈동산식의 탈을 뒤집어 쓴 괴물과 구양봉이 사이좋게 동거를 하는 결말은 제 정신이 아닌 채로 봐야 더욱 재미가 있다. 감독 유진위는 이것으로도 모자랐던지 2년 후에 주성치와 함께 만든 <서유기 선리기연> 과 <서유기 월광보합> 에서도 <동사서독> 은 물론 왕가위 영화들을 패러디 한다.
<동성서취> 는 흔한 말로 희대의 괴작이다. 일급 배우들과 장인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막 나갈 수 있는 무모한 용기는 전통적으로 이런 식의 코미디가 홍콩 시장에서 잘 팔리는 상품이기도 하지만 스타만으로 영화를 뚝딱 만들어 내다 파는 홍콩영화만의 특이한 구조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동성서취> 를 보고 역시 홍콩영화가 다 그렇지, 혀를 차며 극도로 혐오할 테지만 그게 홍콩 영화의 매력 중 하나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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