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픽사라는 감탄이 나올 만하다. <월.E - WALL.E, 2008> 는 매년 한 편의 영화를 만들 때마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픽사의 기술과 남다른 상상력을 정서적으로 납득시키고야 마는 낭만적인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이 여전함을 다시 한 번 증명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혼자 지구에 남은 로봇 월.E. 월.E의 임무는 산재한 고철덩이를 압축한 뒤 잘 모아놓는 것이다. 인간 이외의 생물과 소모품처럼 버려지는 물체에도 엄연히 감정이 존재하고 존중받아야 할 개성이 있다는 픽사의 일관된 입장은 더 이상 새롭거나 하진 않다. 그럼에도 그들 고유의 정서를 환기하는 데에는 여전히 효과적이다.
혼자 지구에 남겨져 지내기를 수백 년. 하루 일과를 마친 뒤 보물처럼 아끼는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뮤지컬을 보며 큰 눈을 반짝이는 로봇 월.E에게 긴 시간 동안 겪었던 감정의 부침과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이브라는 존재는 아마 남달랐을 것이다. 처음 이브를 발견하고는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쫓아다니던 월.E는 어느새 이브에게 그 이상의 무언가를 느낀다. 이브도 싫지 않은 눈치다. 월.E가 이브를 대하는 방식은 오랜만이거나,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것이라 서툴고 실수투성이지만 한순간도 진심을 거두지 않는다. 어떤 의심도 하지 않는다.
낭만적인 뮤지컬의 반복 시청으로 인한 무의식적인 판타지일 수도 있고 이브의 강한 성격에 매력을 느껴서이기도 할 테다. 또, 자기만의 표현쯤으로도 보인다. 어느 것이 되었건 이브의 얼굴을 가까이 마주하고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는 기쁨과 안도감은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절대 과장이 아니라 월.E가 혼자 단조로운 생활을 반복하는 도입부는 살아남은 자의 피로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월.E의 유일한 친구였던 바퀴벌레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사이인 데 비해 이브는 그렇지도 않다.
월.E와 이브의 로맨스는 여러 면에서 풍부한 감성과 이야깃거리를 전해준다. 가장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묘사는 손을 잡는 행동이다. 자신의 맘을 몰라주는 이브가 밉지도 않은지, 몰래 이브의 손을 훔쳐보는 월-E의 눈은 촉촉하다. 얼마나 손을 잡고 싶었을까. 정해진 임무를 수행하고 멈춰버린 이브에게 월.E가 할 수 있는 일은 곁에서 오매불망 지켜주는 것이지만, 혹시 들킬세라 손을 잡으면서 애틋한 마음은 커진다. 망가진 부속품을 교체하자 전혀 다른 로봇이 된 것처럼 반응하던 월.E가 다시 예전의 월.E로 돌아오게 되는 순간에도 둘은 손을 놓지 않는다. 손과 손이 맞닿는 것은 단순한 신체접촉만이 아니라 서로의 체온과 감정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지는 가장 짜릿한 소통의 방법이다.
손과 손이 접촉하면서 반응하는 장면은 여러 차례에 걸쳐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안락한 생활에 안주하던 인간들까지 자극한다.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고 로봇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무기력한 존재에 로봇보다 더 매뉴얼대로만 움직이던 인간들은 '생존하기보다 살고 싶다' 는 각성을 하게 된다. 손으로 통하게 된 남녀가 수영장에서 물을 튀기지 말라는 로봇의 경고를 거부하는 장면은 좀 더 독립된 주체로서 살고 싶은 욕망을 픽사 다운 재치로 보여준다. 손에 대한 집착은 한결 같아서 엔딩 크레딧이 오르기 바로 전에 보이던 월.E와 이브는 여전히 손을 잡은 채로 있다.
<월.E> 는 주인공 월.E와 이브를 제외하면 인상적인 주변 캐릭터가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로봇을 통해 꼭 '함께' 여야 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과정은 찡하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스러운 것은 제 몸 하나 가누기도 어려운 인간들이 과연 척박한 지구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면서 살게 될 지다. 지구를 망쳐놓고는 혼자 살겠다고 도망쳐버린 의지박약 한 인간들, 혹시나 힘들다고 다시 엑시엄을 타고 도망치지 않을지. 우선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죽기 살기의 다이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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