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워 - D-War, 2007> 를 다시 봤다. 내 생애에 <디워> 를 다시 보는 일은 절대 없으리라 생각을 했었는데 일본판 예고편을 보고 '내가 알던 디워랑 너무 다르잖아' 분개한 탓이다. 일본판 예고편은 영화에 대한 별 정보가 없다면 혹하고 넘어갈 만큼 잘 만들었다. 얼마나 영화가 후진지 알고 있는 사람도 다시 보고 싶게 만들 정도다. 지랄 맞은 광풍이 지나간 후라 냉정하게 볼 수 있으리란 판단도 있었다. 설사 <디워> 를 열나게 씹는다고 해도 디워와 심형래 까면 사살~ 이러면서 달려들 정신 나간 사람은 적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본 <디워> 는 여전하다. 냉정하게 보고 말 것도 없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디워> 가 얼마나 후진 영화인지 마르고 닳도록 이야기를 했으니 새삼 <디워> 의 단점을 늘어놓을 이유는 없다. 아니, 사실 영화를 보고 나니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왠지 무기력한 게 다 귀찮아진다. 영화를 보고 나면 삶의 어떤 의욕을 꺾는다는 점에서 <디워> 는 퍽큐 시네마와 닮아 보이기도 한다. 도덕적이지도 못한 주제에 머리도 나쁘고 능력도 없는데다 부지런하기만 한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유인촌 장관을 비롯한 이 정부 인사들에게 <디워> 를 강력 추천한다. 자비를 들여 DVD나 블루레이를 사줄 용의도 있다.
그런데 <디워> 를 보는 도중 자꾸 <영구와 땡칠이 - 소림사에 가다> 가 떠올랐다. 전설로 전해지던 괴물이 수백 년간의 잠에서 깨어난다는 이야기야 그렇다 해도 여러 부분에서 상당히 유사하게 느껴진다. 잠시 <소림사에 가다> 의 줄거리를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악의 위협으로부터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달마대사가 만들어 놓은 보검이 소림사 어딘가에 꽂혀있다. 천 년 만에 깨어난 마왕은 인간으로 환생하기 위해 보검을 차지해야만 한다. 그러나 소림 무술을 동경하던 영구가 소림사로 떠나게 되면서 마왕의 계획은 틀어진다. 이제 마왕은 '부처의 아들' 로 밝혀진 영구와 환생을 위한 사생결단을 벌여야만 한다.
두 편 모두 동서양의 전설과 관련 영화들을 뒤섞어놓는데 주저함이 없어 더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부라퀴의 부하들이 족자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와 맥락 없이 도시를 파괴하거나, 이든 (제이슨 베어) 이 부라퀴에 맞서 칼부림을 하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마왕이 보낸 부하들 (그 중에는 족자에 붙은 귀신도 포함되어 있다) 과 액션을 가장한 개그 배틀을 벌이고 가재의 얼굴을 한 지네 마왕에 맞서 분연히 광선검을 들던 영구 (심형래) 가 떠오른다. 하기야 <디워> 나 <소림사에 가다> 모두 본질적으로 비슷한 영화다. 단지 <소림사에 가다> 가 허세를 부리지 않은 것에 비해 <디워> 는 필요 이상으로 잰 체 한다는 것인데, 제이슨 베어가 심각한 운명론에 빠질수록 영화가 점점 영구 없다~ 스러워지지 않던가.
오백 년을 묵은 부라퀴나 천 년 묵은 지네 마왕이나 어떻게 목적을 이룰 것인지 계획 따위 세울 수 없는 파충류와 절지 (갑각) 류인 것만은 분명하고, 불꽃을 타다닥 터트리며 생을 마감하는 것도 똑같다. 어쨌거나 둘 다 임자를 잘 만난 셈은 아니지만, 더 악연을 꼽으라면 잔뜩 폼을 잡다 스타일만 구긴 부라퀴다. <디워> 에서 잭을 연기한 로버트 포스터의 대사를 빌리자면 그것도 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 이니 어쩌겠는가. 흔적도 없이 장렬히 산화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