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는 다른 날 보다 일찍 퇴근했다. 서점에 들러 노무현 전 대통령 회고록을 구입했다. 출간하기 전부터 재빨리 읽어보겠다고 생각한 책이었는데 타고난 게으름 때문에 미루다가 잊어버리고 있었다. 아침에 이웃 블로거가 올리신 글을 뒤늦게나마 보지 않았더라면 그냥 잊어버린 채로 지나쳤을 거다. 서점에 들러 잠시 들쳐보곤 바로 구입하고 나왔다. 이제는 서서 책을 읽을 만큼 체력이 안 따라준다. 집에 들어가기엔 이른 시간이라 무엇을 할까 잠시 고민을 하다 음료수 하나를 사들고 근처에 있는 다리로 향했다. 뜬금없이 한강 조망을 위해 몇 개의 다리가 새 단장을 했다는 뉴스가 생각났다. 걸어가기엔 적지 않은 거리였지만 이참에 생각난 일은 모조리 해치우는 것도 좋은 일이다. 게으름과 건망증을 달고 사는 인간에게 이런 기회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다.
한강에 있는 다리들은 마음 편히 걷기엔 불친절한 다리였다. 다리 입구부터 보행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동선은 접근자체를 막는다는 느낌이 든다. 보통 1km가 넘는 먼 거리를 걸을 일이 없다고 생각해서일까. 인도는 겨우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다. 가물에 콩나듯 맞은편에서 건너오는 사람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몸을 비틀어 비켜줘야 한다. 소심한 까닭인지 바로 옆에서 쌩쌩 달리는 차들은 보통 위압감을 주는 게 아니다. 어쩌다가 경적이라도 울리며 지나치기라도 하면 깜짝 깜짝 소름이 돋는다. 소녀시대의 리더 태연처럼 난간에 기대어 "나는 할 수 있다" 를 호기롭게 외치기엔 여러모로 위험스런 곳이 한강의 다리다. 애초부터 그렇게 생겨먹은 데다 청계천을 되는대로 뜯어고친 전임자를 착실히 벤치마킹하는 현재의 시장, 디자이너 싼티나 오의 작품이니 바뀌어봐야 얼마나 바뀌었겠어. 내심 삐딱한 마음도 든다.
여전히 다리 입구까지 가는 길은 번거롭지만, 비교적 트인 인도는 덜 위험해 보인다. 화려한 가로등과 인공구조물을 배경삼아 떠들썩하게 사진을 찍으며 지나치는 한 무리의 학생들도 있다. 누구 좋으라고 만들어놓은 관상용 꽃과 나무, 무드등이 쭉 이어져 있다. 척 보기엔 멀끔한 것이 싼티나 오의 재선을 위해 부랴부랴 커팅식을 한 여의도, 뚝섬지구와 똑 닮았다. 그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강이 전면에 보이는 난간에 기대어 주위를 둘러보는데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분명 한강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좋은 일일 거다. 그저 수로에 불과했던 강을 잰 걸음으로 지나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실체가 없다. 강 주위에 어지럽게 들어선 콘크리트 덩어리들로 모자라 그나마 남아있던 것들도 죄다 갈아엎어 한강을 성형 부작용 환자로 만들어 버리고는 뭘 조망한다는 걸까. 가까이 다가가면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광경이니 멀리서 보기만 하라는 건가.
맞은편에서 다정히 걸어오는 연인들에겐 분위기 잡으면서 산책할 수 있는 데이트 코스이긴 할 거란 생각도 든다. 한강 르네상스 마스터플랜이란 거창한 공식명칭마냥 어차피 보기에만 좋으라고 만든 정치적인 쇼일 뿐인데 야밤에 혼자서 웬 청승이냐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