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영화, 가짜 다큐멘터리가 펼쳐지는 현장은 예기치 않은 일들이 끊이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들이 대립한다. 말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꼬장꼬장한 무술감독, 점점 꼬여가는 상황에서도 겉으론 참 사람 좋아 보여 부글부글 속을 끓게 만드는 프로듀서, 내가 왜 이런 액션 영화를 만드는 건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는 감독, 명색이 21세기의 시대, 천의무봉인 CG가 있는데 배우가 직접 스턴트를 하겠다는 구시대적인 발상을 이해할 수 없어 촬영 중에 다치기라도 하면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반 협박하는 매니저, 거만하기 짝이 없었으나 잊고 있던 자아를 발견 (이건 너무 거창한가) 하게 되는 벼락스타 등등등. 영화적인 과장이긴 하겠지만, 이런 소재의 영화들이 늘 보여준 것처럼 <타임리스 - Timeless, 2009> 안의 현장은 끝을 기약할 수 없을 만큼 지리멸렬하다. 하기야 매사 잘 돌아가기만 하는 현장은 영화의 소재로 별 재미는 없을 거다.
류승완이 만든 모토로라의 홍보용 단편영화 <타임리스> 는 요란 번쩍하게 목적을 드러내기보다 영화 촬영현장에서 벌어지는 모습과 오랜 동안 밀고 있는 제품 고유의 콘셉트를 자연스레 맞춰보려 했던 모양이다. 중간 중간 등장인물들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행동이야 다른 영화에서도 특별할 게 없는 일이고, 서너 장면을 제외하곤 두드러지지도 않는다. 서로 다른 기억으로 남아버린 과거의 인연과 작업방식에 대한 차이 때문에 갈등하던 케인 코스기와 정두홍이 극적으로 화해하는 순간에 휴대폰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듯 보이는데, 그보다는 같은 밥을 먹은 사람끼리의 연대감, 가슴 밑바닥에서 차오른 정서가 더 커 보인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란 광고용 노래처럼 겉으론 투닥거리며 속마음을 비치지 않아도 나는 네가 어떤 놈이란 걸 알고 있어, 같은 느낌이랄까. 한 스턴트맨이 중요한 장면의 촬영을 앞두고 그런 말을 한다. "무술감독님하고 주연 배우하고 사이가 좋아도 이런 장면은 될까 말까 한데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될지..." 현재는 다른 위치와 입장을 갖고 있지만 결국 통할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의 합은 마지막을 근사하게 장식한다.
타임리스라는 영화의 제목처럼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란, 귀로 듣거나 글로 옮겨도 참으로 고색창연하다. 다르게 말하면 사전적인 의미로만 남은 구닥다리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저 낡고 거추장스러워서 굳이 담아두려 애쓰지 않는 게 더 익숙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영화 안에서 정두홍이 고수하려던 원칙은 절대 타협할 수 없는 불변처럼 비춰진다. 마지막의 중요한 액션 씬을 앞두고 감독과, 프로듀서, 케인 코스기와 정두홍의 입을 통해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그런 투의 대사와 화면들은 다소 민망스러운 톤으로 채워지고 있지만, 이십 여분의 영화에서 광고용 이미지 약간을 제외하더라도 <타임리스> 는 충분히 남는 장사처럼 보인다. 사족으로 더 이상 특정 장르에 대한 집착이나 흥분이 없다는 류승완의 말은 왠지 이해가 갈 것 같으면서 서운한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