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의 꼴사나운 블러처리
f i l m 썬더버드 2010/11/10 10:21
공중파에서 흡연 장면을 규제하는 것이 새삼스런 일은 아닌데, 전에 만들어진 드라마나 다큐멘터리까지 소급적용을 하는 것은 볼 때 마다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EBS에서 방영하는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육두문자가 절로 나온다. 누가 봐도 튀고 누가 봐도 어설프다. 담배를 손에 쥐고 있거나 불을 붙이는 것까지는 봐주는 모양인데 흡연을 하면 여지없이 뽀얗게 칠을 해댄다. 그 자태가 어찌나 야한지 공중파를 보고 있는 건지 소프트 포르노를 보고 있는 건지 분간이 안 될 지경이다. 난 대체 모르겠다. 불붙인 담배를 들고 있는 것과 피우는 것의 차이가 뭔지. 하지만 추세가 그러니 어쩌겠는가.
그런데 흡연 장면을 블러하는 것에도 일관된 기준이 없으니 문제다. 더 열 받는 거다. 어떤 장면은 흡연 장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다가 또 어떤 장면에선 담배를 입에 물려는 순간부터 뿌옇게 덧칠을 한다. 베를린 장벽에 관한 다큐멘터리처럼 멀리서 피우는 건 되고 가까이서 피우는 건 안 되는 그런 기준도 아니다. 지난 일요일에 방영된 영화 <남자 미용사> 로 예를 들어볼까. 예전 영화답게 담배 피우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저작권에 걸린다니 캡쳐 따위는 없다) 정확히 7분 7초에서 13초, 8분 43초에서 9분 9초, 13분 13초, 28분 44초에서 29분 16초, 30분 10초에서 20초, 33분 54초에서 58초 사이에 담배를 깊이 들이마시고 내뱉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오지만 그냥 내보낸다. 이후부터 블러를 하는 장면과 안 하는 장면들이 무질서하게 반복된다. 똑같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인데 말이다.
그냥 단순한 실수일까. 무려 30초가 넘게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계속 나오는데 실수이기만 할까. 이런 경우를 심심찮게 봐왔던 터라 EBS에 흡연 장면에 대한 원칙이 있는 건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심하게 말하면 꼴리는 대로가 기준인 모양이다. 그 뿐 아니다. EBS에서 방영해주는 영화들을 보면 종종 배경까지 뽀얗게 칠을 하는 경우가 있다. 특정상표가 노출되는 경우인데 이것도 기준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상표는 뿌옇게 가리면서 또 어떤 상표는 그대로 보여준다. 욕 나온다. 짜증스럽다. 이왕 공중파끼리 규정을 정한 거면 화끈하게 다 하던가, 아니면 그냥 놔두던가. 정신 사납게 했다, 안 했다 이게 뭐하는 짓거리인지 모르겠다. 명색이 교육방송이니 노파심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득달같이 달려들어 뽀얀 칠을 해대는 EBS를 보면 변태 같다.
얼마 전에 앙코르 TV 문학관 <삼포가는 길> 을 보니 흡연 장면을 블러하는 대신 처음에 안내자막을 내보내더라. 워낙에 그 드라마에 담배 피우는 장면이 많이 나와서 예외적으로 그렇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건 비데질 일삼는 김비서한테 좀 배워도 될 거 같다. TV가 줄담배를 피우라는 것이 아니다. 자율규정이 생기기전에 제작된 영화나 드라마, 다큐멘터리는 되도록 소급적용 하지 말아달라는 얘기다. 멀쩡한 작품을 누더기로 만들지 말라는 거다. 어차피 강제규정도 아니니 조금만 융통성을 보여주면 안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