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수가 틀렸네요, 1968

 

   사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모두 여자들로만 구성된 화장품 회사, 그 안에서 남자 두 명이 겪게 되는 자잘한 에피소드. 사장의 딸을 배경 삼아 신분 상승을 이루려는 욕망. 그리고 합심하여 공동의 적을 물리친다는 내용의 <번지수가 틀렸네요, 1968> 는 일단 흥미로운 설정이 눈길을 끈다.


   별 다른 직업 없이 거리를 전전하던 구만복 (구봉서) 과 서달근 (서영춘) 은 우연히 성미화학의 직원으로 채용된다. 취직만 시켜주면 열심히 일하겠다는 처음의 다짐과는 달리 여자들만 있는 회사 분위기에 성을 내던 두 사람은 회사를 그만두려 한다. 그러나 천순분 사장 (도금봉) 의 딸 정란 (전양자) 이 프랑스에서 귀국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생각을 바꾼다. 얼굴도 모르는 사장의 딸과 어떻게 잘해서 신세 좀 펴보려는 심산이다.


   <번지수가 틀렸네요> 는 별 볼일 없는 청년이 돈 많고 똑똑하고 예쁜 공주님을 만나 신분상승을 이룬다는 남성판 신데렐라 스토리다. 전통적인 남성과 여성의 위치가 역전된 이 영화에서 남자들은 시시탐탐 무언가를 노리는 사람들로 묘사된다. 그야말로 언감생심.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 먼저 마시는 경우다. 영화 속의 대사를 그대로 인용하자면, 사장 딸을 '물으려' 는 만복과 달근이나 끊임없이 성미화학을 인수, 합병하려는 경쟁 업체의 사장 허태백 (허장강) 과 그의 심복 송전무 (송해) 가 그렇다.


   대놓고 마초 악당임을 자처하는 허태백이 천순분을 여사라고 부르면서 슬슬 음모를 꾸미는 것에 비해 만복과 달근은 상황을 반전할 만한 힘도 없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원하면 가질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자신감을 보인다. 그러면서 천순분과 정란에게 두려움과 경외감을 내비친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똑똑한 여성을 바라보는 그들의 이중적인 시선은 남자다움을 우스꽝스럽게 만들면서 이야기를 끌어간다. 이런 남자들을 향해 천순분은 "남자가 얼마나 위대하고 자랑스러운지 보자" 는 자조 섞인 조롱을 보내기도 한다.


   경쟁에서 뒤처질 것을 우려해 음모를 꾸미는 허태백이나 불순한 의도로 사장 딸에게 접근해 목적을 이루려는 만복과 달근은 가부장제의 부정적인 남성상을 어느 정도씩 보여주는 인물인데, 둘은 선과 악의 개념으로도 나뉜다. 더 나아가서는 우직한 만복과 잔꾀를 부리는 달근도 구분되어지면서 백마 탄 공주님과 결혼하게 되는 신데렐라와 번지수를 잘못 찾은 불청객으로 갈리게 된다. 잘못 찾은 번지수에서도 아리따운 아가씨와의 해피엔딩은 보장된다. 결국, 힘으로 상징되는 기존의 구조 속에서 약자에 불과한 여성과 하층민은 연대를 하게 되는데, 그들이 헤쳐모이는 기준은 착한 마음이다.


   그럼에도 <번지수가 틀렸네요> 는 구봉서와 서영춘을 위해 마련된 무대다. 끊임없이 내부로부터 위협을 당하는 여성과 한 방에 인생 역전을 노리는 하층민의 연대는 세월을 뛰어넘어 여러 상황과 맞닿을 수는 흥미로운 설정이지만 그런 이야기 거리들은 구봉서와 서영춘의 입담과 온몸을 비틀고 자유자재로 표정을 짓기 위해 소비되는 코미디의 소재료에 더 가깝다. 그러면 어떤가. 요즘처럼 요란하지는 않아도 구봉서와 서영춘의 코미디는 충분히 즐거우면서 유쾌하다.


덧붙임

1. 영화의 배경이 되는 화장품 공장은 쥬리아. 지금도 존재하는 브랜드인데 기억하기로는 80년대 까지 아모레와 함께 대표적인 화장품 브랜드였다. 당시 회사이름이던 성미화학이 영화에서도 그대로 등장한다. 2. 일개 회사의 수위가 총을 들고 경비 업무를 보는 건 신기한 일인데 그때는 그래도 되었나 보다.

by 도로시 | 2008/07/30 10:19 | f i l m | 트랙백 | 덧글(0)

욕구불만의 사회

 

   시사인의 기사를 통해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생각이 어떤지를 대충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 중 단연 눈에 띄는 건 자유연애 금지를 선언한 한 후보다. 후보자의 사진 옆에 커다랗게 말풍선으로 박힌 그 문구를 보는 순간 참 웃긴다는 생각이 든다. 대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자연스런 본능을, 남자와 여자의 은밀한 감정의 교류를 어떻게 인위적으로 막겠다는 건지. 또, 그게 막는다고 막아지는 건가. 


   마땅히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타의에 의해 억압당하면 그 스트레스는 상당하다. 욕구 불만, 그거 정말 무서운 거다. 이미 관련 학계에서는 충분히 검증된 이론일 뿐 아니라 <부부 클리닉 - 사랑과 전쟁> 같은 드라마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욕구를 충족하지 못해 생기는 혼란과 당황, 짜증스런 감정 상태가 지속되면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기고 분열로 이어진다.


   가뜩이나 갑갑한 세상이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 정권의 끝도 없는 무능력을 보며 하루에도 수 백 번씩 무력감과 짜증, 분노 같은 욕구 불만의 증상을 느낀다. 그런 스트레스로 인해 감당해야 할 사회적인 비용은 엄청나다. 이런 현상은 '국민만 협조하면 경제 성장 7%도 어렵지 않다' 는 이 정권의 철학 (?) 과도 동 떨어지는 일이다. 또 무조건 통제하고 밖으로 내모는 것이 능사인 지금의 비교육적인 시스템 안에서 아이들은 얼마나 많은 욕구 불만에 시달릴 것인가. 욕구불만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급속한 '노화' 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창 생기발랄해야 할 아이들의 이른 '노숙화.' 그것도 유형무형의 사회적인 손실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욕구불만으로 가득 찬 사회는 비극이다.

   내일이 서울시 교육감 선거다. 교육이 학생 위에 서서 제왕적인 판관 노릇을 하려는 못된 심보를 조금씩 개선할 때도 됐다. 이제껏 그렇게 살아왔다 해도 대를 물려 이어 줄 좋은 제도는 아니지 않은가. 아이들의 밝고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 만이라도 제발 어른들이 정신 좀 차리자.


by 도로시 | 2008/07/29 10:32 | 생 각 (들) | 트랙백 | 덧글(7)

모기향

 

   지난여름에 향기 나는 리퀴드 모기향에 크게 데인 이후로 다른 모기향을 구입해야만 했다. 아직도 리퀴드 모기향의 역한 허브냄새를 떠올리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울렁증이 생긴다. 일단 리퀴드 모기향은 제외하고 매트 모기향과 보통 모기향 중에서 골라야 했는데 고민을 하다가 보통 모기향을 쓰기로 했다. 뽀얀 빛깔답게 비누 냄새가 나는 매트 모기향도 나쁘진 않았지만 예전 생각도 나고 해서 보통 모기향을 골랐다.


   아, 보통 모기향이라 함은 녹색의 막대기가 돌돌돌 말려있어서 결을 따라 쳐다보면 눈이 뱅뱅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요즘에는 리퀴드 모기향이나 매트 모기향에 밀려 쓰임이 적은 물건이 되었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모기향은 이것 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모기향을 사용했을 때에는 모기향을 세워놓을 수 있는 네모다란 은색 지지대 서너 개가 들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요즘에 나오는 건 커다란 통이 그런 기능을 하는 모양이다. 사방에 구멍이 숭숭 나 있는 통의 가운데 부분에는 기다란 막대가 있어서 모기향을 꽂을 수 있다. 짐작하기로는 향이 잘 퍼지라고 그랬거나 타고 남은 재를 손쉽게 청소하라고 만들어 놓은 것 같다.


   통 안에 모기향을 끼워 넣고 불을 붙였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르더니 이내 하얀 연기가 서서히 솟아오른다. 가게에 피워놓은 모기향을 맡으며 성장해서 그런지, 그냥 그 모습이 운치가 있다. 모기향을 피워놓고 누워있으려니 잠이 솔솔 온다. 아마도 향수를 자극하는 냄새에 몽롱해져서 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밤새 모기향을 피워놓으면 온 방안에 냄새가 밴다.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 은은하게 나는 모기향 냄새가 참 좋다.


   하지만, 짐작컨대 보통 모기향에는 '담배 2∼22개비에 해당하는 포름알데히드가 있고, 담배 41∼56개비를 태울 때 생기는 미세먼지' 도 있기 때문에 냄새가 좋다고 느낄 가능성이 크다. 난 하루에 담배 반 갑 이상을 태우는 흡연자다.


by 도로시 | 2008/07/28 10:18 | 생 각 (들) | 트랙백 | 덧글(12)

오겡끼 데스까~

 

   현실에서 뿐 아니라 블로그 세상에서도 관계가 협소하다. 언제부턴가 다른 블로그를 거의 둘러보지 않게 됐다. 이글루에 링크되어 있는 서른 몇 곳, 즐겨찾기에 있는 외부 블로그 열 몇 곳이 전부다. 대부분은 블로그 초기에 알게 된 곳들이다. 한창 뭔가 의욕이 생겼던 시기다. 그런데 링크한 블로그의 거의 절반 정도는 별 다른 기척 없이 문을 닫았거나 반 년 이상 새 글이 올라오지 않는다. 처음엔 무슨 일일까 궁금하고 걱정도 되다가 자연스레 뜸해지곤 하는데 그렇다고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이번 주에만 블로그를 그만두거나 그만둘지도 모르겠다는 글을 두 군데서나 접하게 됐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테고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겠지만 아쉽다. 서운하다. 그렇게라도 흔적을 남겨주니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필요이상으로 궁금해 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한 편으론 가뜩이나 좁아터진 세상 안에서 살고 있는 내가 바깥을 볼 수 있는 창이 더 좁아졌다. 그 분들의 고민을 나도 늘 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블로그를 엎어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좋은 글을 쓸 가능성 보다 남의 좋은 글을 읽을 확률이 더 많을 테니 독자가 되는 게 여러모로 생산적인 일이다.


   징글맞게 비가 와서 그런가, 주말 새벽부터 주인 없는 블로그만 골라 다니며 변태 같은 짓을 좀 했다. <살인의 추억> 의 박해일도 아니고 비가 와서 그랬다는 건 뭔가 이상하긴 한데, 원래 스토킹이 취미다. 아직까지 링크를 삭제하지 못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오랜만에 여기저기 둘러보며 안부를 물었다. 굳이 오겡끼 데스까~ 라고 물어보지 않아도 와따시와 겡끼데쓰 하겠지만, 문득 궁금했다. 정말 잘 지내고 있는지가.


by 도로시 | 2008/07/26 10:03 | 생 각 (들) | 트랙백 | 덧글(16)

단벌신사, 1968

 

   아쉽게도 구봉서와 서영춘의 코미디를 본 적이 없다. 아주 어릴 적에 '웃으면 복이 와요 (2005년에 다시 만들어진 동명의 프로그램 말고)' 를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나긴 하는데 두 사람에 대한 인상은 전혀 없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배삼룡과 남철, 남성남이라는 콤비는 잘 알면서도 그 보다 더 유명했던 구봉서와 서영춘이 생각나지 않는 건 이상한 일이지만 아무튼 그렇다. 기억나지 않으면 못 본거나 마찬가지다.


   <단벌신사, 1968> 는 당대의 유명한 코미디언인 구봉서와 서영춘이 나온다. 그 외에도 양훈, 남보원, 방일수, 송해 같은 코미디언들이 다수 출연하고 있다. 주요 배역 중에 코미디언이 아닌 사람은 주인공의 애인으로 나오는 여자 배우 한 명 (최지희) 과 허장강 뿐이다. 영화는 천만 원짜리 복권을 두고 벌이는 우당탕탕 소동극이다. 호텔에서 도어보이로 일하던 건실한 청년이 우연히 복권을 팁으로 받게 되고 그게 당첨이 되면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은 낡은 양복이라는 상징적인 콘셉트와 겹치면서 교훈을 심어주는 전형적인 문예코미디가 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어수룩하다. 생각지도 못한 횡재에 앞 뒤 못 가리고 호기부터 부리는 무모함도 있고 잃어버린 양복에 거액의 현상금 (?!) 이 걸리자 똑같은 양복을 사기 위해 시장 바닥을 헤매고 다니는 잔꾀도 부려보지만 그런 모습들은 지나치게 허술해서 더 도드라져 보인다. (이런 고정관념이 다소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소시민을 상징하는 순수함은 이 황당한 소동에 큰 설득력을 준다.


   주인공은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직장을 그만둔다. 그리고는 애인과 함께 커다란 저택과 가구를 보러 다니면서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는 꿈에 부푼다. 그런데, 잠깐. 이건 뭔가 웃기는 상황이다. 한참이나 선후가 바뀌었다. 먼저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서는 복권이 잘 있는지 확인을 하고 은행에 가서 돈을 찾은 다음에 집과 가구를 봐야 되는 게 아닌가. 당장 주머니에는 통닭 한 마리 사 먹을 돈도 없는 주제에 길거리에서 천하태평 하는 꼴이니 제 손안에 들어온 운 하나 간수하지 못하고 양복 찾아 서울 유량을 하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두 눈 멀쩡히 뜨고 양복을 잃어버리면서 소동을 키우는 공범이 된다.

  
   <단벌신사> 는 충실한 코미디다. 복권이 든 양복이 여러 사람을 거쳐 가는 과정은 배우들의 슬랩스틱과 말장난, 흥미로운 상황이 적절하게 혼합되어 있는 편이다. 복권 번호에 얽힌 짧은 에피소드가 대표적이다. 주인공이 손에 쥔 복권의 번호는 4848482. 호텔 로비에서 열심히 복권 번호를 외우다가 한 손님과 눈이 마주치게 되는데 하필이면 그 손님이 '사시' 다. 그 순간의 썰렁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지만 꽤 웃기다. 다른 사람의 신체적인 약점을 비하해서 웃긴다기 보다는 구봉서의 능청스런 연기와 아이러니한 상황 자체를 웃음의 소재로 삼는 식이다. 구봉서의 일인이역이자 산사람과 죽은 사람의 경계를 가뿐하게 초월하면서 코미디로 승화 (?!) 하는 오프닝은 실험적이기까지 하다.


   이 밖에도 세탁소 주인 남보원은 서너 차례 나타나 쉴 새 없이 떠들곤 하는데 혼자서 온갖 만담과 성대모사를 하는 한 장면만으로도 우리는 이 뛰어난 코미디언을 오랫동안 잊고 지낸 것 아닌가 싶은 아쉬움이 들 정도다.



by 도로시 | 2008/07/25 10:30 | f i l m | 트랙백 | 덧글(4)

우견아랑 - 阿郞的故事, 1989

 

   어디까지 사실이고 허구인지 확인할 길은 없어도 <우견아랑 - 阿郞的故事, 1989> 은 주윤발의 실제 친구를 모델로 만들어진 영화로 알려져 있다. 감독 두기봉은 <천장지구> 나 <지존무상2> 같은 영화에서 곧잘 눈물 콧물 짜는 신파를 만들어내곤 했는데 <우견아랑> 도 그 범주에 속하는 영화다. 앞의 영화들이 겉으로는 홍콩누아르와 도박이라는 변종 장르에 충실하면서 스크린 밖으로 뿜어져 나올 듯한 비애 (지존무상2 에서 오천련이 죽고 유덕화가 장님이 되는 부둣가에서의 장면들은 압도적이다) 를 풀어놨다면 <우견아랑> 은 그냥 뼈 속까지 신파 멜로드라마다.


   치렁하게 기른 머리에 오토바이 경주를 즐기는 아랑 (주윤발) 은 별 다른 직업도 없이 사는 룸펜이다. 패패 (장애가) 는 그런 아랑과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하게 된다. 후일 고백하듯이 젊은 날의 열정과 치기도 섞여있는 그런 것이다. 문제는 아랑이 책임감 따위는 없는 구제불능의 날건달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두 사람의 처지가 갈린다. 패패는 아랑과 헤어지고 난 뒤에 아이를 낳지만 출산 중에 죽었다는 부모의 말을 그대로 믿고 미국으로 도망치듯 유학을 떠난다. 그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이 되어 나타나지만 아랑은 여전히 길바닥을 전전한다. 패패가 아랑을 떠난 이유는 그의 바람기 때문인 것처럼 묘사되는데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 위태로움에서 벗어나 좀 더 안정적으로 살고 싶은 바람이 컸던 걸로 보인다.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이 겪게 되는 갈등도 그런 것이다. 패패가 보기에 아랑은 변한 것이 전혀 없다. 단지 겉모습만이 아니라 삐딱하고 불성실해 보이는 태도가 그렇다. 패패는 아들이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우견아랑> 은 깊은 오해와 미움으로 헤어진 사람들이 다시 만나 겪게 되는 거의 모든 감정의 부침을 날 것처럼 보여준다. 뒤늦게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엄마와 아들,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길 바라는 아버지와 그런 마음을 알면서도 같이 살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아들, 긴 시간동안 갈라놓았던 미움이 희미해져도 마음 같지 않게 엇나가고야 마는 과거의 연인 사이에는 채 말로 하지 못할 애틋함과 연민으로 가득하다. 배려가 부족했던 지난날에 대한 원망 반, 그리움 반이다. 그들의 뒤늦은 만남은 잃어버린 가족의 틀을 복원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자 동시에 철모르던 한 남자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종종 후회와 반성은 너무 늦게 찾아온다. 인생의 불가해성을 신파로 만들겠다는 의지는 강력하다. 기어이 아랑은 피범벅이 되어 길바닥을 구른다. 언뜻 이런 결말은 무책임해 보이기까지 한다. 곧바로 올라오는 엔딩 크레딧은 더욱 의심을 살 만 하다. 하지만 꼭 그렇게 비극적인 맺음을 했었느냐에 대한 물음은 무의미한 걸지도 모른다. 당시 홍콩 영화의 한 경향 (이자 주윤발이라는 배우만의 아우라) 이었기에 그런 걸 수도 있고, 홍콩판 <챔프> 로 만들겠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혹은 반드시 사랑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뼈아픈 교훈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건 간에 <우견아랑> 은 신파 멜로드라마의 기능을 충실히 한다. 이 영화를 보고 울지 않는 자, 사람도 아니다 라는 우스개가 떠돌기도 했으니 말이다.


   배우들도 좋다. <최가박당> 시리즈에서 드세고 수다스러운 배역으로 알려진 장애가도 눈에 띄지만 뭐니 해도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것은 주윤발이다. 매사 껄렁껄렁한 말투를 달고 사는 고독한 아웃사이더에 주윤발 만큼 어울리는 배우는 없다. 특히 후반부에 오토바이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은 주윤발을 위한 화보다. 길게 뻗은 탄탄한 몸매에 가죽점퍼를 입고 우수에 젖은 표정으로 오토바이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장면은 그의 팬이라면 짧은 탄식이 나올 만하다. 맹랑하면서도 속 깊은 아들을 연기한 황곤현이라는 아역 배우와 든든한 조력자인 오맹달도 빼놓을 수 없다.

by 도로시 | 2008/07/24 11:24 | f i l m | 트랙백 | 덧글(4)

악성 바이러스 정권

 


   이 정부가 하는 짓을 보면 참 거칠 것이 없다. 앞뒤 안 가리고 무조건 밀어붙이면 안 될 일도 되리라는 믿음은 아무리 국정수행 지지도가 바닥을 기어도 요지부동이다. 언행도 마찬가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내는 말은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다.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오해였다고 둘러대면 그만이다. 경제를 총괄하 (지만 죄다 말아먹고 있) 는 장관은 "금리가 100%라도 돈을 빌려주는 곳이 있는 게 더 중요한 사람도 있다" 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높은 대출이자 갚느라 죽어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다. 하나 같이 이 정부의 인사들은 다른 세상의 사람들 같다.


  이 정부는 자신 있었을 것이다. 그런 막무가내야 말로 그들을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힘이었으니 말이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그런 무대포에 혹했다. 노림수야 제각각 달랐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론 행정부와 의회를 한나라당에게 맡기고 맘대로 독재를 하라고 판을 크게 벌려준 꼴이 되었으니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긴 마당에 더욱 거칠 것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 이 정부는 힘으로 밀어붙여서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걸 몸소 실천중이다. 하나같이 초법적이고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라 예상보다 빠르게 민주주의 시스템을 파괴하고 사람들의 정신 건강을 좀 먹고 있다. 진중권은 이를 좀비정권이라 했는데 당장은 퇴치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악성 바이러스 같기도 하다.


   이 정부가 들어선지 다섯 달 만에 대한민국은 국제인권단체의 성지가 될 모양이다. 엠네스티에 이어 아시아의 인권단체 서너 곳이 인권 침해 우려가 심각하다며 조사단을 파견할 예정이다. 어찌됐건 인권침해 요소가 제기된다는 건 그만큼 상식적이지 않다는 걸 뜻한다. 상식이 사라진 사회는 미래의 가능성을 예측하기도 힘들다. 아무것도 기대할 수가 없다. 그런 현상이 지속되는 건 정권의 안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양극화는 이 정부의 일방통행을 가로막을 시한 폭탄이나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을 예측 불가능한 구석으로 몰아넣고 적으로 돌려놔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결국에는 어떤 식으로든 임계점을 넘을 것이다.

by 도로시 | 2008/07/22 20:52 | 생 각 (들)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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