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글을 올린 존 알버트의 다큐멘터리 <의료보장제도, 돈과 생명의 거래 - Healthcare: Your Money or Your Life, Part 1, 1977> 가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빈민층이 어떤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를 피눈물 나게 보여줬다면 마이클 무어의 <식코 - Sicko, 2007> 는 의료보험에 가입한 2억 5천만 명에 관한 이야기다. 자신의 능력껏 보험료를 내어 최소한의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구조 안에 포함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하는 빈민층보다는 조금이나마 나아야 할 텐데 영화를 보면 전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왜? 돈 없으면 병원 문턱도 못 가보고 죽어야 하는 구조는 변한 게 없기 때문이다.
이유는 뻔하다. 다 그 놈의 돈. 한 푼이라도 더 벌어먹기 위해서다. 대규모의 민간 보험회사들은 갖가지 이유를 들어 보험가입과 보험료 지급을 거부한다. '당신은 너무 젊어서 자궁경부암에 걸릴 리가 없다' 는 게 많고 많은 이유 중의 하나다. 그 유명한 스타워즈 시리즈의 인트로를 가져와 보험회사로부터 보장받지 못하는 조항을 열거하며 신체의 부위에는 가격표가 매겨진다. 그로 인해 가족을 잃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과거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증언과 반성이 잇따른다. 정치와 자본의 협력도 빠질 수 없다. 업계로부터 로비를 받은 정치인 중에는 빌 클린턴 재임시절에 의료제도의 개선을 주도했던 힐러리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그 중의 으뜸은 부시 현 대통령이고 그의 걱정은 의사들이 일자리를 잃는 것에만 국한된다. 먹은 만큼 해주는 친절한 대통령이라니.
그럼 다른 나라는 어떨까. 영화는 바깥으로 시선을 돌린다. 마이클 무어가 캐나다와 영국, 프랑스, 쿠바를 돌아다니면서 겪는 상대적인 충격은 충분히 일방적이고 과장되어 있지만 미국 의료체계의 불합리를 끄집어내는 데에 적절해 보인다. 그것은 상식과 비상식의 충돌이고 더 나아가서는 거대한 권력이 만들어 낸 폭력이다. 약하고 병든 이들을 거리로 내모는 세상이 과연 정상적인가. 마이클 무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그곳 어디를 둘러봐도 응급실에서 치료비를 얼마나 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은 없다. 돈이 없어도 아픈 사람을 쫓아내지 않는다.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가 병원의 재정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가를 따지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 치료를 할 수 있느냐다.
현지인에게는 당연하고 이방인에게는 생경하기만 한 풍경. 마이클 무어의 호들갑스러움은 잠재된 미국인의 공포를 보여준다. 영화에서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되는 의료보장 제도는 그토록 미국인들이 두려워하는 사회주의의 악몽이나 다름없다.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구조는 빨갱이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이클 무어가 체험 의료보장제의 종착지로 쿠바를 선택하는 건 우연이 아니라 예정된 결과처럼 보인다. 태어나서부터 늘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온 악당의 나라, 여전히 미국과 화해할 수 없는 쿠바에서 아픈 미국인들은 처음으로 돈 걱정 없이 치료를 받는다. 멀쩡히 악마의 아들이 살고 있는 적의 나라에서 잘못된 구조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설파하는 일은 아이러니하지만, 효과는 크다.
결국 <식코> 는 부시의 등장 이후 마이클 무어가 일관되게 다루고 있는 이야기의 연장선이다. 끊임없이 공포를 조성하고 주입해서 국민을 길들이는 통치 수단이 얼마나 많은 미국인을 끔찍한 고통으로 몰아넣는지를 다시금 환기시킨다. 대다수의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그 거대한 힘이 미치는 곳은 광범위하며 마음 편하게 사는 걸 두고 볼 만큼 인자하지가 않다. 어찌 됐건 지긋지긋하게 괴롭히고 못살게 굴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게 그것의 생리다. 그렇다고 체념만 하기에는 이르다. 폭주를 막을 순 없어도 견제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마이클 무어는 영화를 통해 보여준다. 여전히 그의 방법은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말이다.